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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08. 2019

신이 사랑한 여인을 위해 바친 반띠쓰레이,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앙코르 유적지를 보다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훔쳐갈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예외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훔쳐갔을까? 반띠쓰레이 유적을 훔쳐간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 문학가 앙드레 말로다(범법자인 그는 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소설가며 미술품 애호가였던 앙드레 말로는 반띠쓰레이 사원이 발견된 지 얼마 안 된 1923년 아내와 함께 사원을 방문했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원에 매료되어 며칠 뒤 몰래 다시 방문하여 사원 조각의 일부를 떼어내 파리로 반출하려다 프놈펜을 빠져나가기 직전 발각되어 체포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반티쓰레이 사원은 유럽에 크게 알려지게 된다.

  반띠쓰레이가 앙코르 유적지와 가까이 있다면 아마도 앙코르왓과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시엠립 시내에서 35km 떨어져 있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가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띠쓰레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안다면 그보다 먼 거리라도 단숨에 달려갈 것이다. 보고 나면 '내가 앙코르 유적지에 와서 이걸 안 보고 갔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라고 말할 테니까.

화려하고 섬세한 프론톤의 조각

  사원은 반띠쓰레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척 여성스럽다('쓰레이' 혹은 '쓰라이'는 여자라는 뜻). 붉은색 사암으로 조성된 사원에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오늘날 기계로 작업한다 해도 이렇게 못할 것이다. 이건 인간의 손이 아닌 신의 손이 조각한 것이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을 보는 일정에서 뒤에 가는 것이 좋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다른 곳이 시시하게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반띠쓰레이 사원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생각만 해도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몇 번을 가도 후회하지 않을 곳이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붉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져서 온통 붉은빛이다. 석양의 붉은빛과 어울릴 때는 몽환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입구 들어가기 전 붉은색 황톳길이 사원의 색깔이 뭐일지 미리 알려주고 있다.

  첫 번째 출입문인 동쪽 탑문부터 화려한 프론톤(문틀 위의 장식) 조각이 나를 반긴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왕에 의해 만들어진 사원이 아니다. 그래서 고푸라(사원 입구 문)가 없다. 첫 번째 만난 프론톤에서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탑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서 쳐다봤는지 모른다

동쪽 탑문 프론톤

  어떻게 보면서 들어가야 이 아름다운 광경을 내 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프론톤을 들고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순간 나도 앙드레 말로가 된다. 탑문을 지나서는 정갈하게 길이 펼쳐져 있다. 서른 개가 넘는 링가가 나란히 서서 나를 맞이하고 있다. 단순한 형태의 링가인데도 정교하다. 그저 아름답다. 링가와 나란히 하는 기둥은 아마도 회랑의 기둥인 것 같다. 회랑이 길게 이어져 있다면 하고 상상하니 아름다운 여인이 내 곁에서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이다. 양쪽의 무너진 건물터에서도 섬세한 조각의 흔적은 그대로 있다. 걸으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는 진입로를 왔다 갔다 몇 번을 했다. 그래도 모든 걸 다 내 눈에 담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다.

진입로와 부속 건물터
외벽 문

  외벽 문의 프론톤은 떨어져 나가 없고 담장은 무너질 듯 비스듬히 서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붉은색의 사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상이 태양 아래 반사되며 더욱 강열하게 불타오르니 사원이 온통 불바다다. 단단한 사암에 이런 섬세한 조각을 했다는 사실 놀랍다.


  

  외벽 문을 지나면 해자를 끼고 있는 중앙성소를 만난다. 셀레는 맘에 심장이 쿵쿵거린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앙코르 유적을 사진으로 처음 접했을 때 반띠쓰레이 사원의 풍경이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답게 펼쳐진 사원을 봤을 때 나는 그때 이미 반띠쓰레이 사원을 앙코르 유적의 최고 걸작품이라고 인정했다. 해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았다. 한눈에 들어온 광경은 땅째 들어내 내 주머니에 넣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나는 사진기의 프레임을 맞춘 후 사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반띠쓰레이 사원

  성소 외벽 프론톤은 처음 만났던 탑 문의 프론톤에 비해 장엄하면서도 정교하다. 앞에서 보면 프론톤이 하나같이 보이지만 3개의 프론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뒤로 이어져 있으며 뒤로 갈수록 크기가 커서 마치 화염에 휩싸인 모습이다. 프론톤에 새겨진 조각은 힌두 신화 이야기다. 아름다우면서도 모든 게 경건하다. 건축물이나 조각 자체가 이곳이 앙코르 예술의 최고라고 말하고 있다 '힌두신에게 바치는 불의 예술'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성소 외벽 프론톤
라이브러리

  중앙성소는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중앙성소에는 두 개의 라이브러리와 3개의 중앙성소탑, 전실이 있다. 빼곡히 차있는 건축물에서 여성의 미를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사원이 여성스럽다는 느낌은 중앙성소에 들어서도 여전하다. 라이브러리의 건축은 앙코르 유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의 손으로 만든 예술품이다.

   

  중앙성소탑을 지키는 데바타(여성 문지기 조각)의 둥근 얼굴과 도톰한 입술을 보니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허리를 약간 구부린 모습, 섬세한 치마의 주름, 곱슬머리를 땋아 뒤로 넘긴 모습, 장신구 모형까지 여성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사원을 만든 사람이 궁금했다. 혹시 그들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데바타는 세 마리의 백조가 받치고 있다. 그리고 문쪽을 향해 비스듬히 서있다. 데바타는 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환생하여 천년 넘게 이곳에 있다. 중앙성소탑에는 많은 힌두신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입구에는 원숭이, 새, 사자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석상이 있다.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영원히 신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

중앙성소탑

  왕족이면서 왕이 되기를 포기했던 야흐나바라하 형제는 무슨 생각으로 이 사원을 지었을까? 반띠쓰레이 사원은 976년에 완공되었다. 이때는 앙코르 제국이 안정된 시기였다. 왕의 사원은 갈수록 웅장하고 규모도 커진다. 거기에는 강한 권력의 과시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반띠쓰레이 사원은 권력을 향해 나가는 모습이 아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듯이 기단도 없이 편편하게 지어졌다. 그리고 권력과 무관한 여성을 생각하며 사원을 만들었다. 신이 사랑한 여성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다. 반띠쓰레이 사원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띠쓰레이 사원 가는 길은 예술 기행을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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