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다렸다. 기다리며 믿고 지켜보는 게 답이다

작은 딸과의 대화

by 김쫑

2007. 07. 08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케케^_


아빠! 시험기간 동안 컴퓨터 못했는데 메일이 18통?? 왔더라구요. 그중 절반이 아빠 꺼 ㅋㅋㅋㅋ

아 정말 시험이 너무 싫어요(인제 엄마랑은 사이 꽤 좋아졌음). 앞으로 시험 얘기 안 할 거야!!

아빠 진짜 애들한테 방학 때 중국 간다고 자랑했어요. 짝퉁시장도 가고 싶고 골동품 시장도 가고 싶어요. 불가사리 꼬치도 사 먹고 싶고.ㅎㅎ (많이 찾아봤음)

기대돼요 진짜루>_< 아흐 떨려라~~~~~

더 찾아보고 좋은 정보 알려주는 센스할께요.

그리고 아빠~~ 이건 얘기할까 말까 했는데... 여름방학 때 영어학원 다닐 거예요. 엄마가 가라고 했지만 나도 가려고 했어요. 근데 오늘 곽영일어학원에 테스트 보러 갔는데 두 번째로 낮은 반 됐어영 ㅠㅠ. 꼴찌 아닌 게 다행이지 뭐! ㅎㅎ. 그래도 영어학원 가면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 작은 딸은 엄마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감성적인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낸 건 부모의 잘못이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한 아빠였다). 그래도 작은 딸은 묵묵히 학원을 다녔다. 수학 공부가 얼마나 싫었을까... 기말시험 기간에는 컴퓨터를 보지 않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려고 애썼을 우리 아이. 나는 자식이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저 맘이 놓였던 단순 무식한 아빠였다. 작은 딸은 공부 땜에 엄마와 티격태격 많이 해서 걱정하는 아빠에게 위로하는 글을 종종 써 보냈다. '엄마와 이젠 싸우지 않는다' '요즘 엄마와 사이좋게 잘 지낸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 걱정에 속 깊은 작은 딸은 요즘은 아빠가 자기 작업의 '어씨'로 참여하여 함께 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곤 한다.


PS : 2007년 당시 해외여행 가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우리 집은 내가 공부하러 가서 중국에 살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일찍 해외여행의 기회를 줄 수 있었던 것은 공부 외 덤으로 얻은 소득이었다. 작은 딸은 베이징에 오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인터넷을 뒤지며 검색해 봤다. 나는 작은 딸이 메일에 쓴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가족이 베이징에 오면 쓸 돈이 필요했기에 생활비를 아끼며 누런 봉투에 빨간색 중국돈 100위안짜리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건 눈물이자 희망의 돈이었다. 기말시험이 끝나자마자 보내준 작은 딸의 메일을 읽으며 책상 서랍 누런 봉투 안의 100위안을 꺼내 세어보았다. 18년 전 여름 어느 날, 나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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