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검은 꽃

by 고로케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면이 있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달도 이면이 있듯 어두운 면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종종 자기혐오가 올라올 때가 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종종이 아니라 꽤 자주 있다. 자기혐오에 구역질이 나는 경험을 하는 사람은 많을까? 잘 모르겠다.


최근 들어 감정 기복이 심했다. 새해를 카운트다운 하며 들떴던 연말이 지나고, 설레는 연초의 열기가 꺼진 1월 셋째 주는 내 기분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올해는 전년보다 실적이 높아야 한다는 압박과, 마치 승진을 코앞에 둔 사람처럼 이제는 시니어 급에 가까워졌으니 일을 더 해야 한다는 말들과, 올해 다짐을 왜 아직 시작하지 않냐는 채찍질까지. 내 마음은 마음만 먹으면 침을 묻혀 뚫을 수 있는 창호지에 가까울 만큼 얇고 얇아졌다.


초등학교 때 종이 공예를 한 적이 있다. 얇은 한지를 찢어 물풀을 발라 여러 겹 붙이면 무척 단단해진다. 내 마음도 같았다. 1년 동안 받은 이런저런 상처로 두툼해진 마음이 연초에는 다시 얇디얇아진다. 갈기 발기 찢어진 마음이 쌓이고 뭉치다 보면 또다시 연말엔 두꺼운 책처럼 변해있다. '그래, 사는 게 다 이렇지 뭐. let it be.' 이런 철학자의 마음도 생긴다. 내가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 갓난아이처럼 모든 걸 '초심의 마음으로' 돌리게 만드는 주변 때문인 것 같다.


"너 정도면 임마, 이직하면 연봉이 8천 정도 되지 않을까?"

외근 후 판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성 두 명이 술에 취해 앉아있었다. 내 눈은 손에 든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지만 내 귀는 내 옆 이방인들의 말소리로 향해있었다. 8천이라니. 직업상 돈을 바랄 수는 없지만 왜 돈을 바라면 안 되는지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받은 그저 그런 내 친구 한 명은 내 직업을 '세상에서 제일 쩌는 일'이라 표현했지만 더 이상 벅차오르는 감정도, 심장이 뛰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자기혐오가 하나씩 쌓여 구역질이 나기 직전이었다. 오늘 나는 특별하게 받은 건 없어도 항상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나는 두 손 가득 많은 걸 쥐고 있는데 단 하나도 감사하지 못했다.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쌓였던 자기혐오가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어디서 썩은내가 나진 않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인생에 방향성은 없어도 적어도 감사하는 마음만은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의 미소가, 말이, 그리고 맑은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적어도 나도 누군가에겐 맑고 바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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