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터 출산까지 (2017.01.15. 작성)
초등학생 때 우리 집 옆에는 고아원(보육원이 바른말이지만, 그 당시는 고아원이라 불렸기 때문에 그렇게 쓴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반에도 그곳에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등하교를 같이 하고, 고아원 마당에서 놀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때는 고아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많은 친구와 큰 집에서 같이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연말에 그곳으로 봉사 활동을 가게 되었다. 놀러 가기만 했던 곳에 봉사 활동을 가게 되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때 친구들과 마주쳤는데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봉사 활동이었는지, 어느 단체에서 가게 된 것인지, 누구와 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았다. 그 이후로 나를 피하는 그 친구들과 더는 함께 놀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각종 알바를 했다. 그래도 시간이 될 때 아동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고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도 했다. 그때 가장 싫었던 것은 시설 행사에 자기 자녀를 데려와서 후원받는 아이들의 공연을 같이 관람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부모였다. 알바를 하면서 가족 단위 손님을 담당해도 마음이 아픈데, 그 앞에서 감사의 공연이라니. 그 사람들은 자기 자녀에게 '너의 부모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 시설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부모와 함께 있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시설 아이들이 느꼈을 박탈감은 상상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심지어 시설 아이들 앞에서 자기 자녀한테 "넌 행복한 줄 알아."라는 식의 한심한 말을 내뱉는 부모도 있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 인식되지만, 결국은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것뿐인, 위에서 내려 보는 시선을 가진, 그런 가식적인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시설 관계자는 후원자를 위한 행사를 할 때, 시설 아이들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세심한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
예전에 어느 연예인이 연애 사실을 말하면서 자기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든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자기 여자 친구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며,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좋았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오만함이 너무 불쾌했다. 무슨 기준으로 그 사람들이 자기 여자 친구보다 부족하다고 단정하는 걸까.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리고 싶어서 한 교육기관에 취업했다. 그곳은 소위 영재교육기관의 일종이었다. 부모의 보살핌 안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배워 똑똑한 사람으로 커가는 아이들. 방학이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교육에 소외된 아이들이 겹쳐져서 오래 일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 형편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사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부모님의 사이가 멀어지고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겠다는 판단을 했을 무렵, 주변 어른의 도움 없이 살아갈 때의 막막함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나마 나는 청소년기부터 그런 상황이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상황이라면 더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바라는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 무관심했던 부모나 친척이,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성장해서 성인이 된다는 것을 간과한 그들에게 연락할 자격은 없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내게 어른이 필요할 때는 아무 연락도 관심도 없던 친척들이,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을 무렵부터 신기하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싸***같은 SNS를 통해서, 나와 연락을 하는 일부 친척들을 통해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끔 범죄자에 대해 분석할 때, 가장 큰 이유로 '불우한 가정환경'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려운 환경임에도 그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런 환경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대학생 때 친구한테 선물 받은 가방을 메고 친척 집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 사정은 매우 안 좋았는데 친척 어른의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집이 어려운데 그런 가방 살 돈은 있냐"는 말.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선물 받는 것을 멘 것뿐인데, 명품 가방도 아니고 중저가 브랜드였을 뿐인데, 나는 그런 가방을 멜 수조차 없는 것인지 의아했다. 화장품 값이 아까워 화장도 하지 않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나인데 말이다. 그다음부터는 친척 집에 갈 때 조금이라도 가격이 나가 보이는 것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친척집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됐고, 친척을 만날 때면 다른 곳에서처럼 밝게 웃지도 않았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후원자가 방문할 때면 가장 허름한 옷과 신발을 꺼낸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깨끗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면 후원이 끊긴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편적인 시선인가. 알량한 지원으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른들이 한심하다. 정말 예민한 청소년기에, 한창 예쁘게 꾸미고 싶을 나이에, 또래문화가 활발해서 친구들이 하는 것을 하고 싶을 때, 그 욕구를 꾹꾹 눌러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그들을 바라보는 천박한 시선이 너무나 불쾌하다.
대학 선배(선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와 의견 충돌이 있었을 때 그가 이런 뉘앙스의 말을 했었다. "너처럼 집에서 용돈 받으면서 고생 모르고 자란 여자애들이 문제야."라고. 울컥했지만 좋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없어 보이진 않는구나.'라고.
내 전공은 교육학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교육 복지에 관심이 커져, 학부 때 사회복지학 과목을 들었다. 하지만 알바 때문에 실습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을 것 같아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을 포기했었다. 지금이라도 학점은행제를 통해 부족한 과목을 듣고 실습을 해서 자격을 취득하고 싶지만, 교육 업체마다 비용이 달라 잘 알아봐야 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하더라도 과제와 시험을 신경 써야 하며, 학점 인정을 신청해야 하는 기간도 놓치지 말아야 하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말에만 가능한 실습처(실습 120시간 이상 필수)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왔던 저력(?)으로 해볼까 하다가도, 그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지금 취득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내게 교육학 관련 몇 가지 자격이 있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다. 나중에 보육원을 운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격 취득 후 아동 관련 사회복지사업의 경력이 인정되므로 지금까지의 교육 분야 경력은 인정되지 않을 테니, 이룰 수 있다는 확신도 없지만, 기본적인 자격은 갖춰 놓고 싶다. 고상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인데, 고상한 보육원장이 되면 더 좋겠다. 그래서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서 소외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사실 이것도 여러 꿈 중의 하나다. 아직도 꿈을 꾸는 내가 철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상이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내 삶의 방식이 좋다. 진로는 평생 고민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