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신하지 않았을 때, 임산부 좌석이 시행되었다. 임산부 좌석을 처음 보았을 때, '왜 여성과 관련된 것은 분홍색으로 도배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색이 부담스러워서 사람들이 앉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앉지 않았으니까. 특히, 분홍은 여성의 색이라 인식되는 사회에서 남자들은 더 앉지 않을 것 같아서, 출퇴근길에 그 자리가 거의 비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오판이었다.
| 출퇴근길에서 본 임산부 좌석
본격적으로 입덧이 시작되고 나서 정말 힘들었던 건, 사람으로 꽉 찬 출퇴근길이었다. 약 한 시간 동안의 출퇴근길에서 임산부 좌석은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에 비어있는 것을 거의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에 지하철에서 앉은 경험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거의 없었다. 혹자는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면서 양보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쉽게 말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모두 피곤하고 힘들지 않은가. 양보는 배려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임산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 또한 “앉아있다가 일어나면 된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임산부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양보받아본 경험이 없다. 오히려 “양보해달라는 거예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 JTBC 밀착카메라 [못 본 척 고개 푹… 배려 없는 '임산부 배려석'] 영상 갈무리. 양보는 바라지도 않는다. 앉아 있을 때 뭐라고 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타면 교통약자석(이라 쓰고 노인석이라 읽는다.)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간다. 임신 초반에 임산부 좌석 쪽으로 갔다가 서서 간 적이 많았기 때문에 바로 교통약자석 쪽으로 간다. 교통약자석과 임산부 좌석의 거리가 꽤 있어서, 거의 비지 않는 임산부 좌석(1자리, 임산부 좌석끼리도 거리가 있어서 1자리로 표현)으로 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비어있는 경우가 있는 교통약자석(6자리)으로 가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통약자석이 비어있으면 앉자마자 임산부 배지를 꺼낸다. 이것은 서 있을 때 내놓은 적이 없다. 양보를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해코지당할 거 같은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배지를 꺼낼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위아래로 훑어보는 여러 눈총을 견뎌야 한다. 배지를 보고 나서도 바로 거두지 않는 그 시선들이 참 불편했다.
가끔 교통약자석에 젊은 남녀가 앉는 경우를 본다. 젊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고 개인 사정이 있겠지만, 교통약자석 만이라도 비워두면 좋겠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 때문에 멀미하는 듯한 증상이 있고, 중후반기가 될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팔다리가 붓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정말 힘들다.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좌석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없을 때, 부은 다리를 펴는 경우가 있는데, 꼭 그 앞으로 와서 다리를 툭툭 치는 사람이 있다.
막달이 되어갈수록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엘리베이터를 애용하게 된다. 그런데 뛰어가서 타는 사람 때문에 못 타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잘 뛰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를 위해서 문이 늦게 닫힌다는 안내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늦게 닫힌다며 얼마나 툴툴대는지. 문이 닫히기 전에 내가 문 앞에 도착해도 어느 한 사람 내리지도 않는다. 임산부가 아니라 휠체어가 서 있어도 내리려는 사람이 없다.
버스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는 것조차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냥 손잡이 잘 붙들고 잘 버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사람한테 밀려서 넘어질 뻔한 이후로 버스 타는 게 제일 무섭다.
| 임산부 자체보다 태어날 아가 중심의 배려 캠페인
정부에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캠페인을 한다. 정부뿐 아니라, 육아용품 업체나 병원 등에서도 자체적인 캠페인을 한다. 하지만 그런 캠페인에 있는 문구를 보면 임산부를 위한 캠페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입니다. 임산부를 배려해주세요." - 지하철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 - 지하철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 - 지하철
"배 속에 아기가 있어요." - 초음파 앨범 업체
"지하철 임산부석은 미래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 카시트 업체
캠페인 중의 하나인 '아기의 마음'이라는 보건복지부 공익광고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양보하는 장면은 차치하고라도, 임산부가 힘드니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아가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씁쓸했다. 임산부는 아가를 낳는 몸일 뿐인 걸까. 임산부 자체만으로 양보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걸까.
▲ 보건복지부 저출산 공익광고 '아기의 마음' 편 영상 갈무리. 태어날 아가도 중요하지만, 임산부 자체가 양보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퇴근할 때면 항상 교통약자석에 앉는다는 여성이 있었다. 누군가 양보해달라고 하면 임신했다고 말한다며 웃으면서 이야기했었다. 배울 만큼 배운 전문직 종사자였고 직장에서 이미지도 괜찮았는데 의외였다. 재미있는 건, 그 사람이 임신했을 때 교통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젊은 사람들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임산부가 아님에도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지를 받았다는 글이 이슈가 됐었다. 이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에서는 지하철 공사에 임산부 배지를 배포할 때 임신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배지는 보건소나 병원에서만 배포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증빙을 통해 받아야 하는 것인데, 아무 증빙 없이 배지를 내어준 담당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악용하기 위해 배지를 받고 그것을 인증한 여성도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악용하는 것은, 본인의 행동 때문에 실제로 필요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인데, 이를 간과하면서 자신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 배려와 감사가 가득해졌으면...
처음 양보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임신 초기에는 임산부 배지를 달지도 못했기 때문에 양보받아본 적이 없었고, 조금씩 티가 났을 무렵, 어느 할아버지한테 처음으로 양보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따님이 임신했을 때, 대중교통에서 서서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 놀라고 미안했던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힘들어했던 딸이 생각나서 양보하신다는 말씀에 눈물이 날 뻔했다. 거듭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희한하게 나는, 대부분 할아버지와 아저씨한테 양보를 받았다. 같은 여성에게 배려를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 한 번은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너무 편하게 있으면 뱃속에서 아가가 커서 힘들어진다며 일어나라고 한 적이 있다. 병원에서 아가가 작으니 단백질 많이 먹으라는 처방을 받아 집으로 가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배려는 성별과 연령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임산부도 양보를 받았을 때 너무 당연하게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사의 표현을 제대로 하면 양보했던 그분은 또 다른 임산부에게 양보를 해주실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