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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아빠가 떠오를 때가 있다.



| 노래방


지난 추석, 나훈아의 비대면 공연이 화제였다. 그 연령대 분들처럼 우리 아빠도 나훈아의 팬이었다. 화면에 비친 어르신들과 좋아하시는 시부모님을 보면서, 우리 아빠도 정말 좋아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그렇지만 곧, 아빠의 18번인 “사랑”과 “영영”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게 되더라.


아빠와 함께 가끔 노래방에 갔다. 아빠는 항상 엇박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잘하던 엄마는 그걸 싫어했는데 아빠는 그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노래방에 갈 때면 신청곡을 적어서 내게 불러달라고 하곤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내게 노래 신청을 하면 아빠 생각이 난다. 나는 귀찮아하면서 불렀지만, 아빠는 정말 즐거워했다.



| 머리 고기


아빠는 간식거리를 사서 집에 오실 때가 많았다. 센베 과자를 많이 사 오셨고, 길 가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며 남은 채소를 모두 사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추운 겨울 품에서 따뜻한 머리 고기를 꺼내던 아빠 모습이다. 원래 머리 고기는 그렇게 따뜻하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그때 정말 맛있게 잘 먹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맛있다는 곳에 가도 그런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고기는 잘 먹지 않게 된다.



| 훈제 닭 트럭


명칭을 잘 모르겠는데 꼬치에 끼워 구운 닭 요리를 파는 트럭이 있다. 난 지금도 그트럭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고, 그건 먹고 싶지 않다. 사업이 망한 후에 아빠가 했던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하면서 아빠의 피부는 검게 탔고, 몸에서는 항상 기름 냄새가 났다. 그 일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그때의 아빠 모습이 떠올라 내가 힘들어서 그렇다. 얼마 전, 동네에서 그 트럭을 본 적 있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버렸는 걸.



| 뼈 있는 음식


나는 뼈 발라 먹는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빠가 발라줬기 때문에 습관이 된 듯하다. 내가 발라 먹으면, 뼈에 남아 있는 것을 아빠가 먹었을 정도였다. 아빠는 누가 이렇게 해주냐며 그런 남자 아니면 만나지도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만났던 남자의 대부분은 뼈를 잘 발라줬고 지금 남편도 그렇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갈비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나는 아이를 돌보고 있고 남편은 열심히 뼈에 붙은 살을 발랐다. 그리곤 내게 그 그릇을 넘기고, 자기가 먹을 것을 바르기 시작했다. (장이 활발한)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옆 테이블에 있던 아주머니가 오셔서, '애기 아빠가 애기 엄마 나 몰라라 하고 자기 것만 챙겨 먹는 줄 알았다.'며, '남편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다.'고 하셨다. 그때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 라일락 담배


아빠는 내 말을 대부분 잘 들어줬다. 그런데 유일하게 들어주지 않은 것이 금연이었다. 담배 한대당 5000원이라는 거금의 벌금을 제시한 적도 있었고, 부탁도 협박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남자 친구 조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일 정도로 나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금연하지 못했다.


좀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싶다던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한 게  한이 됐다. 그렇게 그날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마지막 한 개비 피우게 해 드릴 것을. 아빠 돌아가신 후 아빠에게 갈 때는 꼭 아빠가 피우던 '라일락 담배'를 가지고 갔었다. 하지만 그게  단종된 후에는 그냥 술만 챙겨 간다. 아빠가 서운해하겠지만 금연 성공한 것으로 치면 되는 거지 뭐.


금연을 시도하다가 금단 현상이 왔던 아빠는, 담배 안 피우는 남자가 어디 있냐며 내게 화를 냈었다. 그런데 나는 흡연자를 사귄 적이 없다. 흡연자가 사귀자고 하면 언제나 담배를 끊어야 생각해보겠다고 했을 정도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한 사람만 고려했다. 지금 남편도 담배 끊느라 고생했고 지금은 나보다 더 담배 연기를 싫어한다.


아빠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담배를 끊었을까?



| 암 걸리겠다는 표현


 하다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암 걸리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표정 관리하기 힘들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노력했다. 암(특히, 말기암) 환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가는지 곁에서 봤기 때문에 그런 말이 우스개 말로 쓰이는 게 너무 불편했다.


언젠가 우리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게, 내 앞에서는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내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나 본데, 그 사람은 굳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고상샘, 예능을 다큐로 받으면 어떻게 해요. 농담도 못하겠네."


그 사람은 지인 사이에서 유쾌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내게 기억엔 그저, 화목한 가정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무례한 철부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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