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2018.01.11. 작성)
우리 집엔 TV가 없다. 요즘 인기 있는 방송인을 보면,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TV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 어쩌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소리에 방송을 보게 되면 결국은 별로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불편해지곤 한다. 혹자는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예능을 다큐로 본다'며 내게 뭐라 하지만, 나는 방송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방송인이 싫고, 그런 방송인을 옹호하는 사람도 싫다.
얼마 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이혼한 남자에게 "집밥이 그립지 않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혼을 하면 집밥을 먹고, 이혼을 하면 집밥을 못 먹는 것일까? 먹고 싶은 사람이 해 먹으면 되는 것이 밥이지, 애도 아니고 어른의 밥을 누군가 꼭 챙겨야 하는 것일까.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집밥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는 여러 패널들의 말을 들으니, 답답해졌다. 재혼해서 집밥을 먹으라는 조언(?)을 한 패널까지 있었다.
예전 글에서 썼던 것과 같이, 나는 집에서 요리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료 구입부터 뒷정리까지 너무 긴 시간이 들어가고 요즘같이 가족 구성원이 적을 경우에는 남은 재료 관리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정상이라며 부담 주는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평소 나의 이런 생각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내가 이유식을 열심히 만드니 신기해한다. 당연히 사서 먹일 줄 알았단다.
집밥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이유식을 만드는 이유는,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니 좋은 재료를 맛보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른이야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지만, 아가는 어른이 주는 것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잘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 아가는 내가 만든 이유식을 잘 먹어 준다. 그러니 더 열심히 만들게 된다.
살면서 유기농 채소를 이렇게 많이 사본 적이 없다. 아니, 유기농이 아니라 채소를 이렇게 사본 적도 없다. 아가 이유식에 넣지 못하는 식재료의 딱딱한 부분은 나와 남편이 소진하다 보니, 아가 덕분에 우리도 채소를 챙겨 먹는다.
잘 안 먹던 채소나 과일도 먹게 된다. 식재료의 연한 부분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남은 부분은 간단한 반찬을 해서 먹었다. 이유식 만들 재료를 정하면 그에 알맞은 어른 식단을 구성하기도 하고, 어른이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로 이유식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무가 재료인 날은 소고기 무국, 가지가 재료인 날은 가지무침, 두부가 재료인 날은 두부조림, 아욱이 재료인 날은 아욱 된장국, 브로콜리가 재료인 날은 브로콜리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식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아가뿐 아니라, 나와 남편도 잘 챙겨 먹게 됐다.
남편은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오로지 아가를 주기 위해 오렌지 즙을 내리고, 여러 과일을 깎는다. 남은 과일은 남편과 내 몫이다. 그리고 나는 송이버섯을 제외한 버섯을 잘 먹지 않는다. 표고버섯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미끌 거리는 식감이 싫어서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표고버섯 가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것을 사용하면서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 식재료 궁합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새우젓에 찍어먹는 게 좋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유식을 만들면서 되도록 궁합에 맞는 식재료를 조합하려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식재료 궁합을 습득하게 됐다. 식재료 궁합을 정리한 것은 중기 이유식(죽)과 간식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너무 아파서 이유식을 만들지 못했을 때 사놓은 시판 이유식을 먹이기도 한다. 시판 이유식은 단계별로 덩어리가 일정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간혹 우리 아가와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아가마다 먹을 수 있는 덩어리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아가가 먹는 것을 보면서 덩어리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요즘 시판 이유식도 잘 만들어져 나오지만, 가끔 재료가 너무 적게 들어가 있는 경우를 본다. 특히, 소고기*** 이유식인데 소고기가 정말 5조각도 안 들어 있을 때는 어이없다. 그때는 손질해서 얼려 놓은 소고기를 더 넣어서 줬다. 아무래도 이유식을 직접 만들게 되면 재료를 듬뿍 넣게 된다.
뭐 먹을 것도 없는데 냉장고는 뭐가 이리 꽉 차 있는지 모르겠다. 채소 칸에는 채소가 아닌 것들이, 냉동실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각종 봉지들이 가득했다. 이유식을 만들고 나서는 냉장고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채소 칸에는 채소들이, 냉동실에는 손질한 재료들과 만들어놓은 이유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게다가 음료 칸에는 재료를 손질할 때 만들어진 육수와 채수도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이 새벽에 목마르다며 급히 물을 찾다가 육수를 먹은 일도 있었다.
중기 이유식 후반부터 계속 불 옆에서 저어야 하는 편수 냄비를 벗어나 전기밥솥을 사용했다. 너무 창피한 일이지만 밥만 했을 때는 전기밥솥을 자주 닦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재료를 넣어 이유식을 만들다 보니 전기밥솥을 매번 닦아야 했다. 이유식은 게으른 나를, 조금은 부지런하게 한다.
이유식 회수와 양이 많아질수록 이유식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다. 이유식 재료를 사고 손질하고 소분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 이유식 만들다가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리곤 한다. 게다가 아가가 자는 동안 조용히 만들다가 아가가 나를 찾으면 멈춰야 하기 때문에 행동이 이어지지 않아서 더디다. 그래서 재료 사고 손질하는 것은 집중해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주말에 남편이 있을 때 몰아서 해버린다.
식재료를 손질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한 바가지 나온다. 아가가 먹을 수 있는 부분만 떼어 내고, 나머지 부분을 우리가 소진하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온다. 기본적인 껍질만 해도 많은 양이다. 도시보다 텃밭이 있는 외곽에 살면 더 잘 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뼈가 가는 편이다. 출산 후에 뼈가 많이 아프다. 특히, 손목 발목이 제일 아프다. 그래서 재료 손질할 때 무거운 식재료가 버겁고, 초기 이유식인 미음을 끓일 때는 계속 젓고 체에 내리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는 재료를 믹서로 곱게 갈면 돼서 괜찮았는데 단계가 높아질수록 아가에게 맞는 크기로 칼로 다지느라 힘들었다.
내가 요리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칼에 대한 두려움이다. 워낙 겁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어설픈 칼 사용으로 손가락도 많이 다쳤다. 그래서 재료를 손질할 때도 식칼을 잘 사용하지 않고 끝이 둥근 과도를 사용한다. 보는 사람은 답답하겠지만 나는 그게 최선이다. 수박을 정말 좋아하지만 칼로 써는 것이 무서워서 잘라줄 사람이 있을 때 부탁할 정도다.
우리 집은 더운 편이다. 그래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지만 여름은 죽을 맛이다. 그래서 이유식을 만들 때 너무 덥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나도 땀을 뻘뻘 흘리고, 이유식을 만들고 나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회복이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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