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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 Jul 25. 2024

출근길에 피어난 꽃들.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소새울역은 출구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지하로 길게 늘어져있고 개찰구를 지나고 나서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한참 내려가야 정거장에 도착한다. 나는 길게 이어진 에스컬레이터가 무섭다. 행여나 자빠질까 봐 손잡이를 꽉 잡고 탄다. 가끔 잔고장으로 멈출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녀석을 마주하기가 무섭다. 나보다 어르신들이 더 기겁하신다. 한숨을 푹 내쉬고 짜증을 내면서 조심조심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 


    나는 소새울역에서 안산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소사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반대방향인 이곳도 사람이 제법 많다. 특히 서해선은 4량 열차라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시골 동네버스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출근길 매일 똑같은 열차를 타기 때문에 매일 보던 사람들도 마주친다. 우리가 인사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기에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열차에 타지 않을 때면 지각일까? 휴가인가? 퇴사한 건가?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열차가 신천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특히 할머니들이 많이 내리는데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할머니들끼리 서로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귀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사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로 이어진다.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 나는 그 소리에 빠져든다. 그 많은 할머니들이 어디 있다가 이렇게 우수수 나오는 건지 이 풍경은 마치 여학생들의 등굣길 모습 같다. 앞뒤로 할머니들뿐이다. 이렇게 매일 할머니들과 출근하다 보니 자연스레 할머니에게로 눈이 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백팩이었다. 다들 작은 백팩은 하나씩 매고 있는데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요새 유행하는 인형키링도 달고 있는 할머니도 계시는데 '손주가 달아줬을까?' 아니면 '직접 다셨을까?' 상상하게 된다. 패션에도 눈이 갔다. 이제 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은 무채색이거나 튀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반면에 할머니들은 다양한 패턴과 꽃무늬, 색상까지 옷스타일도 다 달랐다. 스타일이 겹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입어도 여태 눈에 띄지 않은 게 신기했다. 마치 마네킹에 입혀진 옷처럼 다들 자신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역시 여자의 패션은 노년에 완성되는 게 분명하다. 옷은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말대로라면 할머니들은 꽃이다. 꽃무늬패턴이 할머니들 옷에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꽃들이 내 주변에 피어있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꽃길을 지나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한 상상이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간 다음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또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간다. 운 좋게 할머니들도 나와 같은 출구로 향한다. 꽃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를 한 번 더 타고나면 할머니들은 횡단보도에서 나와 반대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골목길로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그 너머를 볼 수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장면은 거기까지다. 마치 영화 크레디트 같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정류장 쪽으로 걷는다. 몇 걸음 지나서 도착한 정류장, 내 귀에 들려오던 재잘거리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사람 목소리 하나 없는 적막함, 차도에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만이 내 귀를 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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