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조용한 외출.

by 고순

이번 주 연휴 내내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날씨에 집에만 있기 답답해 아버지와 잠깐 바람 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전에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를 잠깐 갈까 하고 나온 것이다. 자동차로 얼추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 길,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비 올 때 듣는 재생목록이 있었고 그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차오디오에 그 노래가 흘러나와 차 안으로 울려 퍼졌다. 어떤 여자분이 옛날 노래 20곡정도를 쭉 부르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목소리가 구슬프면서도 과거의 슬픔이 떠오르는 것이 내 마음을 적적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조용히 흥얼거렸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 보니 차를 탔을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나와 누나들에게 노래를 양보했었다. 아버지가 듣고 싶은 노래를 차오디오로 들려준 적이 지금이 처음인 것이다. 처음이라는 사실이 멋쩍기도 하고, 노래에 심취한 아버지의 모습이 참 보기 좋기도 하여 나는 입을 닫고 조용히 운전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차도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도시 외각에 있는 평온한 카페에 사람들이 왜 몰린 것인지. 우리는 카페에 몸만 쓱 들렸다가 다시 차로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랑 함께 커피를 한잔하러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물왕저수지가 떠올랐다. 그 근처에는 분명 한가롭게 쉴 수 있는 좋은 카페가 많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한옥 카페를 찾아냈다. 그곳으로 목적지로 설정하고 우리 부자는 물왕저수지로 향했다. 아까 듣던 아버지의 노래를 마저 재생했다. 가는 길 아버지는 카페가 뭐가 필요하냐고 말하면서 비 쏟아지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지금 차 안이 충분히 좋다고 내게 말했다.


한옥카페는 영업 중이라고 되어있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영업을 하지 않었다. 다행히 그 옆에 내가 또 찾아본 카페가 있어 거기로 들어갔다. 물왕저수지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유자차를 시킨 아버지와 나는 약간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가벼운 수다를 나눴다. 집에 있을 때는 우리 부자는 서로 별 말을 안 하고 산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 각자의 생활을 보낼 뿐이다. 그런데 카페에 있으니 아버지가 말이 많으셨다.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딱히 정의할 수가 없지만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 이런저런 한 단어로 퉁쳐버린 대화들이 내게 많지만 그렇게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벽과 ㄱ자로 붙여진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대화하다가 침묵이 흐를 때면 벽에 등과 머리를 기대, 창밖 풍경 너머 물왕저수지에 이름 모를 녹색 산과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흡수하고 있는 어두운 저수지를 바라봤다. 산 주위로 얇고 기다란 안개가 조용히 떠있었다. 그 정취가 좋아 집으로 가자고 말한 아버지를 붙잡고 몇 분만 더 앉아있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 때문에 몇 분을 더 앉아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페에 올 때와 달리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거센 빗방울이 차체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앞유리를 정직하게 닦아내는 와이퍼 소리가 내 귀로 들려왔다. 휴대폰을 열어 아까 듣던 아버지의 노래를 또다시 틀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는 익숙해진 듯하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23화사랑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