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이나 되는 길고 긴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날 때 떠진 눈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어나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내가 원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목 끝까지 이불을 감싼 채, 크게 심호흡을 10번 했다.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른 채 천천히 들숨, 날숨 코 안으로 밀려오는 공기가 느껴진다. 배까지 가득 차오르는 공기가 내게 오늘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부풀려진 배와 숨을 눈 감고 느끼며 오늘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은 제법 괜찮았다. 회사에 출근한 나의 일과도 평온했다. 긴 연휴가 끝나도 별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쭉 살아야 하는 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 어쩌면 출퇴근의 연속적인 삶이 무의미할 정도로 — 다만 퇴근 때 거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바지와 신발을 젖어야만 했다.
퇴근길, 음울한 하늘 아래 번듯하게 놓인 정류장이 아닌 정류장표지판만 놓인 불완전한 골목길에서 집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방금 막 지나간 버스 덕분에 배차 타이밍이 꼬여버린 나는 집까지 걸어가기 싫었고 비를 좀 맞더라도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분쯤 지나자 왼쪽 100미터쯤 안 되는 삼거리에서 버스가 90도로 꺾어진 길을 돌아 내 쪽으로 왔다. 타야 할 버스인데 버스 내부가 어두웠다. 왜일까. 자세히 보니 승객이 너무 많아 버스 전등을 가린 것이다. 팔을 휘두르지 않은 소극적인 자세 때문인 걸까. 승객이 많아서 탈 수 없던 걸까. 버스는 내 앞에서 조용히 오른쪽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버스를 붙잡을 생각도 없이 멍하니 떠나보내야 했다.
다행히 우리 집으로 가는 또 다른 버스가 나타났다. 여기도 사람이 많아 나는 뒷문으로 타야만 했다. 버스에는 고등학생들이 가득 차있었다. 아까 지나간 버스도 비슷했을 것이다. 늘 이 시간에 버스를 탔을 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했지만 학창 시절이 10년도 넘은 나이기에 그들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턱이 없었다.
이리저리 앉고 서 있는 학생들의 부드럽고 생기 넘치는 피부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젊음이 내게 선명하게 보였다. 부러웠다. 나도 저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나이 드는 게 싫다고,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생각은 끝내 어둠으로 얼룩져 형편없는 시기를 만들어냈다. '너네도 언젠간 나처럼 될 거야.' 그러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때마침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이 뒷문으로 탔다. 그 사람에게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다. 잡다한 생각을 몇 번 하고 나니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까보다 비는 잔잔해졌지만 신발 속 양말이 약간 젖어 찝찝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명상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아침에 했던 것처럼 숨 쉬는 것에 집중하는 명상을 한다. 머리에 늘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뇌를 내버려 두면 마음 한편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에 집중하기 전에 명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명상을 안 한 지가 좀 됐다. 그 말인즉, 나는 지금 머리에 생각이 많고 집중하지 못한 상태란 뜻이다. 요즘 명상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뭐라고 딱히 꼬집을 수 없다. 말하기 싫지만 굳이 말하자면 귀찮아서가 아닐까 싶다. —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귀찮아서라는 말 한마디면 다 넘어갈 수 있는 것만 같다.
오늘 명상을 한 이유는 아침에 이불속에서 내뱉은 10번의 호흡이 생각나서였다. 방안 가운데 의자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흑적색이 가득하고 주황색 섬광이 떠다니는 어둠 위로 쓰고 싶은 글들이 생각났다. 연휴에 극장에 가 영화를 본 것도, 추석에 동해바다를 간 것도, 여의도 공원에 텐트에 누워 힐링하던 시간도, 어젯밤 침대에 누워 읽다가 잠든 <노인과 바다> 책의 내용도, 아빠가 남기고 간 저녁 밥상도, 내 반짝한 영혼이 사그라지는 슬픔도. 그 모든 것들이 겹겹이 계속 쌓여가지만 나는 날숨으로 다 뱉어내고 다시 들숨으로 삼켰다. 반추를 하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아니, 반추하는 것도 잃어버린 지금... 삑. 삑. 삑. 삑. 삑. 삑. 명상의 끝을 알리는 아날로그 타이머의 정직한 알림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