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 깜순이.

by 고순

어렸을 적 시골 섬에 살았을 때 키우던 개가 있었다. 보리밭처럼 아름다운 황금빛 털을 갖고 있는 암컷 진돗개, 이름은 깜순이었다. 순하게 생긴 눈, 좌우로 앙증맞게 솟은 귀, 이쁘게 늘어진 입꼬리와 자연스레 내민 핑크색 혀까지 고운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현관문 앞에 놓인 자홍색 지붕의 개집과 그 옆에 놓인 기둥에 묶인 깜순이의 생활 반경은 3미터도 되지 않은 곳에 홀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언덕에 자리 잡은 우리 집에서 한눈에 내려 보이는 시골마을 풍경이 깜순이의 유일한 낙이었다. 우리 집으로 이어진 오솔길에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깜순이는 늠름하게 짖었다. 우리 가족이 나타나면 주체하지 못하는 몸과 함께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붓처럼 기다란 꼬리를 선풍기처럼 흔들며 우릴 반겼다. 아빠는 늦게까지 일하셨고 집은 늘 비어있었다. 우리 집을 지키는 깜순이만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깜순이가 사랑스러워서 머리와 턱 밑 그리고 등을 털이 날릴 정도로 마구 쓰다듬곤 했다.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과분한 애정표현을 하는 깜순이가 몇 분 남짓 동안 나를 얼싸안았다.


깜순이는 불쌍하게도 요즘 강아지처럼 제대로 된 산책을 한 적이 없다. 가끔 목줄이 풀린 적이 있었는데(직접 풀었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깜순이는 뒷산과 숲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우리가 직접 찾지 않아도 깜순이는 저녁쯤에 집에 돌아와 물그릇에 얼굴을 들이박고 거친 호흡을 내쉬면서 물을 마셨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끼니를 제때 준 적이 없었고 개사료보다는 라면이나 짬통을 먹으면서 자란 깜순이는 8년 뒤, 내가 섬을 떠날 때까지도 아픈데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잘 지냈다.


그러고 나서 5년 정도 더 살았다. 깜순이는 암에 걸렸다고 했다. 무슨 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어떤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대낮에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 아저씨는 타고 온 오토바이 뒤에 깜순이를 태워 함께 조용히 떠났다. 그때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깜순이의 마지막 모습이다. 깜순이가 눈 감기 전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 길거리에 보이는 강아지들이 많다. 그중 깜순이를 닮은 진돗개를 볼 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더 잘해줄걸. 맛있는 걸 줄 걸, 산책을 시켜줄걸, 목욕도 시켜줄걸, 더 따뜻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할걸. 휴대폰 앨범 속에 3장밖에 없는 깜순이의 사진을 꺼내 조용히 바라봤다.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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