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친구와 무위하게 오전을 다 보낸 일요일,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중식을 먹기로 했다. 친구는 배달로 음식을 시켜 먹자고 했지만 나는 동네 중국집 잘하는 데가 있으니 나가서 먹자고 친구를 꼬셨다.
친구가 왜 나가기 싫은지 나도 잘 안다. 외출준비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집 앞이 아닌 어림잡아 15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 중국집이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싶었다. 특히 중식은 더 그렇다. 배달음식으로 중식을 먹으면 면이 불어서 싫고, 배달 용기에 담긴 짜장면은 무언가 맛이 없다. 또한 음식의 생기가 사라진 것이 싫고, 뒤처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까탈스러운 취향 때문에 친구는 마지못해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헝클어진 폭탄머리를 숨기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중국집으로 갔다. 동네 짬뽕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지만 다른 음식도 다 맛있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친구들이 종종 자고 갈 때면 다음날 해장을 하기 위해 데려오기도 한다. 다들 짬뽕을 먹지만 나는 짜장면이 더 좋아 늘 짜장면을 먹는다. 친구와 나는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 배부르게 먹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우리는 입가심으로 식사 중에 사이다를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고진감래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식사 내내 탄산의 욕구를 참았다가 마지막에 먹으면 '그래, 이거지!'라는 감탄사와 함께 식사의 끝을 알리는 시원한 감각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사이다는 단맛이 강하게 느껴져, 개운하지 않아 물 한잔을 더 마시고 나왔다.
친구와 나는 집 근처 언덕길로 이어진 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가을이지만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싫어 요리조리 태양을 피하면서 걸었다. 자연의 나무와 풀은 햇빛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는데 나는 살이 타고, 늙는 것이 싫어 태양을 피하며 산다. 태양을 마주하기 싫은 사람이 태양이 마주한 장소로 가는 것이 이상하지만 이 끌림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 공원은 누나들과 따로 산 이후로 오랜만에 온다. 누나들과 밤에 이 길을 따라 둥글게 걸으면서 산책도 하고 수다도 떨고 했는데 이제는 과거로 남아버렸다. 나만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누나들은 다른 곳으로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측의 산책길을 따라 쭉 걸었다. 놀이터가 나왔고, 그다음 농구장이 나왔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 둘이 입을 벌린 채로 기분 좋게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다음 족구장이 나왔는데 이제 막 온 아저씨들이 몸을 풀거나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언덕길 정상에 도착하자 늘 있던 정자가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거기에 잠깐 휴식을 취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쫙 보였고,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 시원한 날씨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아까 보던 나무들이 담갈색으로 변해간 채 바람에 따라 연약하게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 마치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나 국도를 지나다 보면 나무와 풀들이 차도로 삐져나온 채,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내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처럼 — 자연의 떨림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갈색푸들이 내 쪽으로 총총 걸어오더니 어깨와 배를 내 다리에 딱 붙이고 내가 쓰다듬는 손을 거절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똘복이라고 했다. 산책 중이던 주인은 이제 그만 가야 한다고 목줄을 살며시 당겼지만 똘복이는 내 다리가 좋은지 주인과 작은 실랑이를 벌어야 했다. 주인은 "애가 사람을 좋아해요."라고 무신경하게 내게 말했다. 나를 좋아하는 녀석이 좋아 더 쓰다듬고 싶었지만 똘복이는 주인을 못 이긴 척 내 다리에 붙인 어깨를 떼고 내리막길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렇게 짧은 똘복이와의 만남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내려가는 산책길에서 똘복이를 몇 번을 더 마주쳤다. 나무의 냄새를 맡고 있는 똘복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행정복지센터 입구 앞에 걸린 초등학생 시들을 다시 보곤 했다. — 순수한 생각이 담긴 글과 그림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 아까 공원에서 본 똘복이처럼 집까지 느릿느릿 걸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니, 열려있던 베란다 창문틈으로 나른하고 평온한 감각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바닥에 눕고 싶었지만 참고 베란다를 마주 보고 있는 흔들의자에 무거운 머리를 기대고 반쯤 누운 채로 앉았다. 눈앞에는 베란다 창문 너머의 세상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저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뿐인데 마음의 평온함을 얻고 온 것이 좋았다. 나는 자연스레 흔들의자 우측 선반에 놓인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소설책을 꺼냈다. 오늘은 다 읽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종잇장을 넘겼다. 종잇장 넘기는 소리가 내 귀에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