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은행동 골목길 아파트 입구에 일직선으로 길게 솟은 거대한 은행나무를 지나가다 가끔 보곤 한다. 그 나무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한여름의 핀 녹색 은행잎이 풍성해서 아름다웠다. 가까이 가서 보니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겹쳐서 더욱더 화려해 보인 것이다. 서로의 간격이 1M 채 되지 않는 두 나무는 생기 넘치는 젊은 부부 같았다.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우뚝 솟은 은행나무 부부의 아름다움에 나는 고개를 들고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본다.
이번 여름 경주에서 더 큰 은행나무를 본 적이 있다. 황남동고분군 주차장 쪽을 우연히 지나다가 밤하늘에 우뚝 솟아오른 은행나무의 자태에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강한 조명을 받은 은행나무는 잎사귀의 질감이 선명했고 거대한 바위처럼 웅장했다. 자세히 보니 네 그루의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내 눈에는 그들이 단란한 4인 가족처럼 보였다. 아빠, 엄마, 아들 하나, 딸 하나, 주고받는 사랑이 넘쳐 쑥쑥 커져버린 가족.
그 뒤로 나는 키가 큰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부부와 가족이 보여준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 사계절을 외롭지 않게 보내는 그들이 부러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