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걷는 청계천.

by 고순

평일 저녁 종로 3가, 버거킹 2층 창가 자리 앞에 혼자 앉아 조용히 햄버거를 먹는다. 핸드폰 배터기가 한 자릿수에 가까워지길래 배터리를 절약할 수 있는 비행기모드로 변경했다. 뿌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탑골공원 앞 사거리 횡단보도가 훤히 보였고, 그 위로 차는 좌우로 사람들은 상하로 차갑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내 쪽으로 고개를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햄버거를 먹다가 불쑥 바른 자세를 실천하기 위해 복압에 힘을 주고 어깨를 날개처럼 좌우로 펼쳤다. 어쩐지 불편하면서도 편한 것 같은 어색한 감각이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겨울이 불쑥 찾아온 10월의 하순은 해가 이미 다 지고 없었다. 햄버거를 먹고 밖에 나오니 고층 건물의 빛나는 창문만이 하늘에 별처럼 무수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오랜만에 청계천을 갈까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의 청계천은 회색과 검은색 그리고 전구색밖에 없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내뿜었다. 나는 시청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돌 길을 따라 걸었다. 뜨문뜨문 있는 나무들 사이로 졸졸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어둠을 가득 머금고 있는 물에서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청계천의 시냇물처럼 정직하게 걷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세상을 관찰하려고 부릅뜬 눈은 산만했다. 나는 산책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지도 못했다. 서울 한가운데에 홀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이방인 같았다. 잡생각에 혼란스러워한 머리는 갑자기 — 숨을 쉬는 게 당연한 것처럼 — 괜찮아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외로이 서 있는 앙상한 나무처럼 관조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어두운 강 위로 미디어아트쇼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형형색색의 디지털 물고기를 봤다. 창문이 별처럼 반짝이는 것처럼 청계천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청계광장이 가까워졌다. 파란 조명 위로 쏟아지는 인공폭포와 그 앞에 홀로 서 있는 왜가리가 나를 반겼다. 요란한 물소리와 반대로 녀석은 물 한가운데 세워진 동상처럼 견고했다. 나와 왜가리의 거리가 3m 채 되지 않았는데,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멀 게 느껴졌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녀석은 얇은 다리를 큰 보폭으로 물 위를 천천히 움직이더니 반대편 쪽으로 걸어갔다. 멀어져 가는 왜가리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청계천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휴대폰 배터리는 없었고, 집까지는 1시간도 넘게 걸렸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종이책을 읽고 싶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기로 했다. 도서검색대에서 책 위치가 적혀있는 종이를 3개 정도 뽑았다. 고전문학이었기에 다 같은 위치에 있었다. 나는 사고 싶었던 책을 사려고 했는데, 그만 가판대에 놓인 책에 흥미가 생겼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라는 책이었는데 책띠지에는 알베르 카뮈가 이 소설을 통해 영감을 받아 이방인을 썼다고 적혀있었다. <이방인>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 심지어 오늘 이방인이 되기도 했다. — 나는 그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그 책을 읽었다. 몇 페이지정도.


그날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뿌리내리더니 이내 나무가 되었다. 나무의 열린 열매는 아마도 비행기모드 휴대폰, 서울의 차가운 풍경, 빛나는 창문, 굳게 닫힌 입, 외로운 나무, 검은 물, 왜가리의 뒷모습, 이방인 그리고 청계천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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