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뛰기 위해 작년에 대구에 다녀온 적이 있다. 대구 시내버스를 타려고 교통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찍자 "사랑합니다" 음성이 흘러나왔다. 보통 "승차입니다." 아니면 "띡" 소리만 나고 끝일 텐데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귀를 쫑긋 열고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승차하는 승객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따뜻하게 말하는 음성 소리를 기분 좋게 들었다. 대구 시내버스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제 보니 사랑한다는 말을 가족과 연인 말고는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듯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 사랑을 말로 주고받는 것이 소수의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는 걸까. 그래서 그랬던 걸까. 대구버스 단말기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 로봇에게서 사랑받는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랑한다는 말은 좋아함 그 이상, 최상급의 표현이다.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말이 없기 때문에 말이 주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 오히려 한 단어로 마음을 다 담기에는 부족한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간지럽고 부끄러워서 목소리까지 떨린다. 그 말을 뱉고 난 뒤 흐르는 어색한 공기가 마치 니치 향수의 잔향처럼 진하게 맴돌아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듣게 될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랑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지 않다. — 사랑은 그렇게 쉽게 훼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나온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말처럼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