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하며 보내는 삶.

by 고순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여름은 이제 떠나고 가을이 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반팔만 입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살짝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25도 아래로 꺾인 요즘 날씨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세상의 공기를 집안으로 잔뜩 들인다. 역시 에어컨 바람보다 자연의 바람이 포근하고 좋기만 하다.


오늘 평화로운 바람을 느끼면서 가을을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을의 기간이 짧아져 실질적으로 2달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2달 뒤, 겨울이 오면 지금의 선선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가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만끽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봄에는 봄의 정취가 있고, 여름도 여름의 정취가 있고, 가을도 겨울도 각자 계절의 정취가 있는 것이다. 사계절을 만끽하고 보내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만끽하라는 뜻으로 귀결된다.


'만끽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인가를 마음껏 누리거나 욕망을 충족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껏 누린다는 것도, 욕망을 충족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살다 보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만끽하다'의 뜻에는 인간이 누려야 하는 삶의 좋은 부분을 다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 계속 내 입에 붙는 것이 삶을 영원히 만끽하며 살아가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만끽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글로 적어본다.


평화로운 월요일, 오후 6시를 달려가는 저녁. 하늘 위로 퍼져있는 구름이 마치 조용한 파도처럼 떠밀려가고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생각에서 글로 치환하는 멋들어진 과정을 보내고 있다.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지만 필히 편안하고도 은혜로운 표정이 분명하다. 집중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 켜둔 아날로그 타이머의 째깍 소리는 심장박동처럼 정직하게 울린다. 손가락 아래로 펼쳐진 무접점 키보드의 경쾌한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 뒤쪽에 탄탄하게 감싸고 있는 의자 쿠션이 듬직하게 느껴진다. 책상 위에 놓인 화병에 담긴 꽃들의 싱그러운 향기가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흰색과 노란색의 소국화, 하얀 안개꽃 그리고 크림색 카네이션의 조화가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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