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이 쏟아지는 산책.

by 고순

여름의 더위가 제법 꺾인 저녁, 나는 석촌호수공원을 걷고 있다. 날씨가 선선해 공기가 시원하기만 하다. 약하게 부는 바람을 느끼면서 부지런히 앞으로 걷는다. 걷고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 무수히 많은 삶들이 이곳저곳 불쑥 솟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호수를 따라 둥글게 놓인 길 위로 반대로 가는 사람 없이 한쪽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이 어쩐지 신기하기만 하다. 석촌호수에 올 때마다 다들 이쪽 방향으로만 걷지 않았었나. 누가 방향을 정해준 걸까. 모두 다 반대로 걷는 순간은 언제일까. 지금 누군가가 이 순리를 거스른다면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을 것만 같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이 다 그게 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존재가 사라져 우리로 동화된 느낌. 그 품에서 나는 사람냄새를 맡으면서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가로등과 어둠이 서먹서먹하는 길 따라 놓인 크기가 제각기 생긴 나무들을 본다. 스산하면서도 아름다운 검은색 실루엣이 가득하다. 빛이 닿지 않는 풀밭은 완벽한 어둠이다.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누워 다시 개인의 존재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만 같은 그곳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을 더 들여다봤다.


나뭇가지들이 제각기 좌우로 뻗어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꼿꼿하지 못한 이유는 중력 때문이 아닐까. 중력이 최소한으로만 있었다면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아주 반듯하게 자랐을까. 내 키도 더 자랐을까. 내 머리카락도 처지지 않고 생기가 넘쳤을까. 내 팔자주름도 사라졌을까. 관절이 아픈 사람도 이리저리 잘 움직였을까. 비행을 동경한 사람들은 새들과 함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을까. 꼬리를 꼬리를 무는 몽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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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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