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서 자학하는 성격은 아녔다. 어릴적에도 지금도 변함이 없는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성질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내가 부러워한 몇가지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철이 들기 전. 말 그대로 어리기 때문에 가능했던 본능이었을까.
친구네 집엘 가면 벽에 유치원 졸업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학사모를 쓴. 그야말로 멋드러지게 찍은 액자. 솔직히 유치원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내게 그 액자는 소위 있는 집. 그러니까 부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홈드레스를 입고 간식을 준비해주시는 친구 엄마도 부러웠다. 그리고 친구네 집에 있던 멋드러진 피아노까지. 딱 그 세개가 그렇게 부러웠다.
들리는 음악이 뭔지도 모른채 마냥 듣기를 반복했다. 훗날 돌이켜보면 그때 남아있던 카세트 테이프를 단서 삼아 추적해본 바. 그것들은 트로트와 만화영화주제가 그리고 클래식이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뭔지도 모른채 마냥 헝클어진 머리의 그 아저씨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보였다. 검정색과 하얀색 건반이 번갈아가며 길게 뻗은 피아노는 한 순간에 가장 선망하는 악기가 되었다.
주산, 암산, 웅변, 태권도, 국영수 보습학원을 포함하여 피아노학원까지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내 주변을 이루는 학교 밖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허나 나는 단 한 곳도 단 한 달도 다닐수 없었다. 가고 싶어도 말한마디 꺼낼 수 없었다. 그럴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그런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커다란 달력 뒷면에 잘 나오지도 않는 싸인펜으로 건반을 그려 연주를 흉내냈다. 어떤 건반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지도 모른채. 계이름을 깨우친것은 국민학교 교실에 풍금을 마음껏 만져도 되었던 4학년쯤이었을까. 그마저도 학교를 반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여 다른 친구들 오기전까지 기껏해야 10여분 연주 흉내내는 것이 전부였다. 배운적이 없는데 연주가 될리 있나.
나중에 엄마께서 들려준 이야기. 7살 위 큰형의 국민학교 졸업식. 눈이 엄청 와서 막내인 나는 집에 있으라고 아버지께서는 신신당부 하셨다 했다. 아무도 없는 텅빈 집. 장손의 졸업식이니 온가족 출동에 왜 나만 빠졌는지 심술이 났나보다. 결국 나는 학교로 몰래 잠입했고,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졸업식 노래에 맞춰 피아노치는 흉내를 냈댄다. 그 장면을 본 엄마는 막내아들 피아노 사주면 신나서 칠텐데 사주지 못하는 마음에 늘 미안했다고 하셨다.
5학년이 되었다. 어느날 집에 보니 고장나기 직전의 낡은 풍금이 한대 있었다. 고물상 리어카에 실려 버려지는 풍금을 할머니께서 여차저차 말씀을 잘 하셔서 집에 두신거라 했다. 막내 손주 피아노를 그리 좋아하는데 풍금이라도 있으면 소원 풀까 싶었던 것이다. 60개의 건반이 빼곡히 자리잡은 풍금이었다. 오른쪽 다리 허벅지로 페달을 옆으로 젖혀야만 소리가 나는 제법 고풍스러운 악기였다. 하지만 건반 2개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연주라도 그 부분을 두드려야 할땐 입으로 대신 소리를 냈다.
진득하게 그 풍금을 갖고서라도 연습을 했다면 덜 억울했을 터. 그럴리 만무했다. 어느날 풍금은 사라졌고 피아노에 대한 갈망도 허공으로 사라졌다. 록메탈에 빠졌고 재즈와 블루스 제3세계 음악까지도 즐겨 들었다. 20대의 정점에서 나는 음악 관련 분야에서 밥벌이도 했고, 가끔 그럴듯한 글로 주목도 받아보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선 연주에 대한 본질적인 그리움과 욕망이 용솟음 쳤다.
비겁한 변명이 아닐 수 없었다. 학원 끊어 다녔음 될 일. 멍청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닌데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럴듯한 핑계로 스스로에게 주어진 기회 혹은 시간을 당차게 버렸다. 시간은 삽시간에 흘러 우리나이로 마흔여섯살이 되었다. 두번째 스무살을 보내고도 6년이 더 흘렀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도 될 나이였다.
속담이나 인용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간혹 쓰는 표현 중 하나가 '가장 늦었을때가 진짜 늦은거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해라'라는 내멋대로 지은 말이다. 이미 충분히 늦었으나 더 늦기전에 지금이 빠른게 맞다. 바로 맞는 소리다. 띠동갑 지인도 과거 내 나이때쯤 베이스 기타를 어깨에 걸치지 않았던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일도 아니고 깊은 심해로 잠수하는 일도 아니다. 익스트림 스포츠라 목숨을 내놓을 일도 없다. 방구석에서 조용히 피아노만 졸라 연습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아직 한달도 안됐다. 아무리 연습이라지만 지루하고 지치면 금방 포기할까봐 하고 싶을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악보도 볼 줄 알고 오른손은 꽤나 잘 움직이니 양손치기만 제대로 터득하면 연주하고픈 곡 몇개는 냉큼 외울 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에 아내도 좋아하고, 두 아들 녀석도 궁금해하면서도 시큰둥해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전혀 부끄러운 시간은 아니지 않은가.
해외직구로 산 12달러짜리 실리콘 건반. 기계음이지만 피아노소리가 난다. 88개 건반에 페달도 있다. 우선은 이걸로 이어나가야 할 터. 매진하는 방법 외엔 없다. 연습은 원래 무식하고 진득하게 차근차근 앞으로 향하는 것이다. 속도의 문제가 아닌 방향성의 문제. 그리고 설령 원하는 지점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 까지 다다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완벽이 아닌 최선을 향한 다짐을 꿀꺽 하고 삼킨다.
피아노가 있는 풍경에 풍덩하고 빠진다.
악보 없이 좋아하는 곡을 그럴듯하게 연주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