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신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 ㅣ 이창길 ㅣ 몽스북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은 도대체 언제 누가 만든 것일까. 그놈의 서울 서울 서울. 88 올림픽 당시 오죽하면 용필이 목소리로 <서울 서울 서울>이란 노래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걸까. 이제는 금수저 흙수저의 영역을 벗어나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특권'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도래한 시대가 되버렸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서울과 그 수도권에 살고 있는 건 무슨 조화일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문화예술 분야는 서울에 95% 이상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감독님 께서 늬들도 결국 로컬 아니냐고 유머러스하게 비꼬셨지만, 그래서 더더욱 서울도 보는 관점에 따라 로컬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행히도, 몹시, 심각하게! 대한민국에서 서울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곳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연유에 저자는 서울 외 지역 특히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컨텐츠 개발에 격렬하게 힘쓴 멋진 분이시다. 부제가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일 정도로 그는 고인물 특히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내는 1차원적인 아이디어를 뛰어 넘는 그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도전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패도 거울삼아 꾸준히 전진하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슬로건을 반드시 만들어 정체성을 부여하는 점. 계획이 아닌 기획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계획보다 기획이 늘 필요하다고 자부하는 입장이라 저자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이것저것 해야겠다 라고 다짐하는 수준의 계획은 사실상 세우자마자 허공으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허나, 그 계획을 정확한 근거와 일정 그리고 체크리스트를 동반한 기획으로 섬세하게 다듬어 진도를 나간다면 그에 따른 결과값은 만족하지 않더라도 분명 도출된다.
아주 작은 기획부터 예행연습을 해야 할 터. 무엇보다 아주 커다란 기획을 답습하듯 마치 경기가 끝난 바둑판을 복기하듯, 다른 기획을 거스르는 것도 분명 유믜이한 일일 것이다.
이번 책은 한달에 한번꼴로 찾아뵙는 처갓집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완독했다. 편도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라 왕복이면 책 한 권 읽기가 딱 좋다. 그래서 더더욱 집중도가 높았고, 저자의 의도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대차게 말아먹은 두 번의 술장사와 함께 한동안 기획하고 또 준비하기만을 반복하며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나만의 사업 아이템들도 모처럼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수십년간 이어오셨던 나전칠기를 다시 상품화하여 해외 수출을 준비하고자 했던 몇개월의 시간. 기게처럼 찍어내는 공산품에 질려 사람 손으로 직접 만든 수작업 제품으로 이뤄진 연합을 만들겠다고 나홀로 동분서주했던 또 몇개월의 시간. 영화제 인력의 낭비와 소모를 막기 위해 부천, 부산, 전주를 주요 테마로 하여 인력의 고급화와 효율적인 근로환경을 만들어주고파 준비했던 시간까지...
생각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하나씩 헤쳐나가는 저자의 모습은 짐짓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내 모습 그대로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저자는 아직도 그 미션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결국 처자식 먹여살리는 핑계로 뻔하고 뻔한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빌어먹게 산다는 것이다.
반성하고 참회하고 다시 준비해보고 싶은 욕망이 혀끝에서 파르르르 떨렸으나, 당장 아내에게 전할 기획안이 준비된 것은 아니라 조용히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까지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갈비뼈로 움켜쥘 수 밖에 없었다.
도시계획 따윈 일찌감치 개나줘버린 근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서울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부모님때부터 7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서울토박이로 살아온 터에 나 또한 서울에서 태어난 특권을 그간 직간접적으로 누려온 것도 사실이다. 허나 기획을 하고 창의적인 일을 함에 있어 서울이라는 상징이 갖고 있는 무겁고 일방적이면서도 고여있는 낡은 것들은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함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한 두근거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분명한건 10년 가까이 출근때마다 지문을 인식하는 지금 회사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아주 오래전부터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어서 빨리 그 두근거림과 고루한 현실의 교차점에서 미치도록 행복한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그 환호성을 지를때. 본 책의 저자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꼭 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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