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자들이 한바탕 춤을 추는 카드에는 내용이 길지 않더라도 나름의 진심이 담겨있다. 표지에 카네이션 그림에는 사인펜과 색연필이 들쑥날쑥해도 향기 나는 생화 못잖은 감동이 느껴진다. 두 아들 녀석이 어버이날이라고 나와 아내에게 건네는 직접 만든 카드는 자식을 둔 부모라 품을 수 있는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다.
결혼을 하고 나름의 가정을 꾸리면서 동시에 다짐한 것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술 마시자 하시면 같이 마셔드리기. 어머니 말씀은 일절 거역하지 않기. 그리고 부모님 곁에서 살기다. 두 형은 오산과 부천에 터를 잡았으니 막내인 나라도 가까이 사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이해해 준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아내의 부모님도 내 부모님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낳아주셨으니 그건 두 번 생각할 이유도 못된다. 아내 고생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장인어른 장모님께 효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 약속을 잘 지켜온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가끔은 막내아들 시키는 게 미안해서 고장 난 밥솥 그대로 두고 냄비밥을 드셨단다. 덕분에 이제 밥솥 수리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현관 센서등은 물론, 욕실과 싱크대 수전, 가스레인지, 세탁기, TV 리모컨도 직접 고쳐드린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뵈니 휴대폰 작동법도 일주일 단위로 해결해 드린다. 막힌 속이 뻥 뚫리기라도 하신 듯,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되려 보는 내가 더 고마운 일이다.
느지막이 글자 공부를 시작한 어머니께도 여유가 될 때마다 힘을 실어드린다. 최대한 느린 속도로 모든 표현과 설명을 가장 쉽게 전한다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 막내아들에게 가장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신 당신 마음에 늘 미안해서 함께 글자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올 때면 괜히 불안해진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저녁. 어머니 호출로 잠시 들린 부모님 댁. 주무시던 아버지께서는 때마침 일어나셨고 술 한 잔 어떠시냐고 예의상 드린 질문에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 동네 마실 다녀오겠다며 어머니는 잠시 외출을 하셨고, 아버지와 단둘이 2시간 가까이 소주 마시며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오징어볶음에 고추장 멸치볶음, 그리고 초록빛 영롱한 나물 무침을 안주 삼는다.
매일 먹는 반찬처럼.. 제철 나물의 향내와 같은.. 알싸한 술 한 잔의 취기까지.. 효도하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