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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8. 2021

퇴사는 피하는 방법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은행을 다니는 일반 시민에게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방법을 아는지 물어봤다. 그 은행원은 유재석의 질문에 본인이 그 질문에 답을 안다며 자신 있게 답한다.

 

“빚을 내면 돼요. 입사하자마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돈을 벌어야 되니까 참게 됩니다.”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0여 년 전, 신입사원 교육에 강사로 온 선배 한 명이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던 나와 동기들은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그는 본인이 말하고 본인만 혼자 웃었다.

 

몇 년 후, 그 선배가 퇴사했다. 회사에서 누군가 퇴사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첫 반응은 ‘부럽다’지만 이내 그 사람이 왜 퇴사를 하는지, 그러니까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된다. 그 선배와 친하지도 않았고 그와 나 사이에 겹치는 친한 사람도 없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사내 소문의 요정들 덕분에 ‘사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이었고 대기업에서의 경영 수업을 마치고 집안 사업을 도와주러 갔다’ 정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게 그의 퇴사에 대해 내가 들은 전부였고 그는 자연스레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 인스타그램에 낯익은 사람이 추천으로 떴다. 아주 작은 사진이었지만 단번에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10년 전 신입사원들 앞에서 본인의 퇴사를 피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놓고 혼자 퇴사해버린 선배라는 걸 알아차렸다.


사진 속의 그는 10년 전에 혼자 말하고 혼자만 웃던 모습과 똑같은 미소를 똑같지 않은 옷을 입고 짓고 있었다. 그는 요리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진상으로 유럽으로 추정되는) 해외의 요리 대학교(인지 대학원인지, 아니면 요리 교육 프로그램인지)에 가서 요리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불혹을 넘기고,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여느 직장인들보다는 이르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고 느낀 건 부러움이었을까, 씁쓸함이었을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금수저의 장점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일반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오는 반면, 금수저는 그런 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리셋하듯 언제든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금수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보고 나서 선배의 사진들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진 속의 선배, 그리고 선배의 자녀들이 유독 더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매일 퇴사를 생각한다. 제법 식상해질 법도 한데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매번 새롭다. 퇴사하고 싶은 이유는 이렇게까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에 시간을 쓴다는 게 내 인생이 너무 아깝고 죽을 때 너무나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랄까. 내일 죽을 것 같은 용기로 퇴사했는데 아무 대책 없이 명줄만 길까 봐 퇴사하기가 무섭다.

 

그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르는 퇴사 욕을 어떻게 하면 억누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귀 뒤에 타투.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타투를 하는 애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타투가 많이 일반화되었다는 걸 느낀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손목이나 팔뚝같이 ‘굳이 숨길 의지가 없는 게 명백한 곳’에 타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지만 귀 뒤에 하는 타투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일단 목 위에 하는 것 자체가 포스가 남다르다. 손목이나 팔뚝은 정 필요한 순간에는 긴 옷을 입어서 가릴 수 있는 반면에 귀 뒤의 타투는 살색 파스를 붙이는 게 최선의 방법인데 귀 뒤의 파스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거대한 귀미테라고 하면 믿을런가.


그게 어떻게 퇴사를 막는 방법이 되냐고 묻는다면 귀 뒤에 타투가 있는 사람은 재취업이 안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타투가 일반화됐다고 하더라도 일반 회사 중에 귀 뒤에 타투를 한 지원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흔치 않을 것이다. 다시는 회사원으로 살지 않을 다짐이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역발상이다. 내가 가끔 결혼이 후회될 때 거울 앞에 서서 넓어진 이마를 보며 '그래 그때 결혼 잘했어' 되뇌듯이(갑자기 눈물이...) 퇴사가 유독 하고 싶은 날이면 거울 앞에 서서 귀 뒤의 타투를 보며 '야 너 지금 퇴사하면 갈 곳 없어' 되뇌는 것이다.

 

평소에 회사 친한 후배들과 타투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했고 나는 그때마다 귀 뒤에 타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 후배가 손목에 타투를 하고 와서는 자기는 했는데 나는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 후배의 손목을 보니 진짜 손목에 타투가 있었다. 그런데 시계를 차는 곳에 정확히 겹쳐서 상시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문득 어라  뒤에 타투하면 앞으로 퇴사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겠는데 생각이 들어 후배에게 말했다. "절대 퇴사하면   일이 생기면 할게요. 어느  갑자기   뒤에 타투가 있으면 이 사람 이 회사 벽에 똥칠할 마음 먹었구만 생각해줘요.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자세한 건 물어보진 말고."  


하지만 실제로 귀 뒤에 타투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퇴사를 꼭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염려증이 있기 때문이다. 몸에 바늘이 대는 걸 병적으로(건강염려증은 병이니까) 싫어한다. 바늘을 통해 균이 내 몸에 들어오는 데 대한 포비아가 있다. 타투를 하려면 몸에 바늘을 대야 한다. 따라서 타투를 할 일이 없다.

 

타투를 해서라도 회사에 붙어있으려고 발악하는 거보다 건강염려증이 때문에 타투를 못 하는 게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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