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담는 기록
겨울에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고드름이야. 처마 끝에 고드름이 길어지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고드름을 따러 다녔어. 커다란 고드름이 인기가 많았는데, 그런 고드름은 꼭 높이 달려있더라. 점프를 해도 손이 닿지 않아. 그럴 때 언니•오빠들이 동생들을 들어 올려 고드름을 따게 도와주거나, 그것도 안 되면 싸리 빗자루를 가져와서 높이 들고, 고드름이 부러지지 않게 살살 조금씩 흔들어서, 고드름이 싸리 빗자루 사이에 쏙 끼워지게 떼어냈어.
우린 고드름을 하나씩 나누어 들었어. 고드름이 쪼로륵 붙어있을 땐 맘에 드는 걸 골라 똑 떼어내기도 했고, 이거 예쁘다, 가질 사람? 묻기도 했고, 가위바위보로 고를 순서를 정하기도 했어. 제일 큰 고드름은 깍두기가 원한다면 깍두기에게 주었어. 제일 어린 동생에게.
고드름을 따면 처음엔 꼭 맛을 봤어. 별맛은 안 나지만 웃음은 났지. 길가에 쌓아둔 눈을 쏙쏙 찔러 이름도 쓰고 삼각형 두 개를 그려 별모양도 만들었어. 투명한 고드름을 햇빛에 비춰보면 꼭 보석 같았어. 고드름을 눈앞에 대고 얼음 사이로 알록달록 친구들을 보고, 강아지를 보고, 하늘을 보고, 그러다 빙빙 도는 건 왜 매번 신비로웠을까? 와와 감탄이 나왔지. 얘들아, 이거 한번 봐봐, 이렇게 해봐.
그런 다음엔 칼싸움 놀이를 했어. 마주 보고 서서 고드름을 챙 부딪쳐. 하나가 부러져도 둘 다 부러져도 속상하지 않았어. 남은 건 멀리 던져 깨트리는 재미가 있으니까. 깨트린 고드름 조각은 조심조심 모아 눈 아래 숨기면 보물이 되니까. 고드름은 다시 따면 되고 다른 놀이도 있으니까. 혼자 심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아이들이 있으니까.
겨울은 어김없이 오고, 키가 작을 때 언니•오빠들이 따주던 걸 어느새 내가 동생들에게 해 줄 수 있었어. 싸리 빗자루로 저 높은 고드름을 따는 감각도 익혔어. 장갑이 다 젖은 아이가 있으면 내 장갑을 한 짝 나눠줄 수 있다는 걸, 더 큰 고드름을 친구에게, 동생에게 줄 수 있고, 그게 더 기쁠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어.
고드름은 겨울이 주는 긍지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