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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나무를 아세요?

기억 속에 살고 있는

by 고야씨


어렸을 때, 우리 집 뒷마당 오른쪽 구석에 고야나무가 있었어. 고야나무 아래엔 개집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 대부분의 집이 그랬어. 마당 한구석에 고야나무, 그 옆에는 개집.


고야나무에 하얀 꽃이 가득 피면 벌들이 붕붕 모여들어서, 꽃향기를 맡으려면 용기가 필요했어. 강아지에게 밥을 주러 가려면 고야나무를 지나야 하는데, 그 예쁜 꽃을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가 얼른 꽃향기를 맡고 싶어지는 거야. 호들갑만 안 떨면 벌에 쏘일 일이 없다고 엄마는 말했어. 벌도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쁘다고. 며칠 머뭇거리다 꾹 참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갔던 날을 기억해. 벌소리가 이쪽저쪽에서 울렸어. 처음엔 가깝고 큰 그 소리에, 느낌에 긴장이 돼 숨도 겨우 쉬었어. 그랬는데, 가만히 있어보니 정말로 벌들은 꽃 사이를 다니느라 바쁘더라고. 나는 곧 편안해졌어.


고야는 작은 자두 같은 열매야. 초록빛 고야는 떫어. 연둣빛 고야는 시어. 노란빛 고야는 새콤달콤, 빨간 고야는 달콤해.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엄마랑 아빠, 내 동생을 위해서 빨간 고야를 따고, 내가 좋아하는 연둣빛 노란빛 고야도 따. 바가지 가득 담은 고야를 찬물에 잘 씻어서 마루에 올려놓는 건 깨끗한 기쁨이었어.


올해는 누구네 집 고야가 풍성하고 맛있더라 소문이 돌면, 아이들은 마음이 발끈해서, 우리 집 고야도 엄청 맛있는데! 하며 각자의 고야나무를 위해 나섰어. 그러다 다투기도 했던 걸 보면 고야나무는 우리들의 자랑이었나 봐.


고야나무를 정말 좋아했어. 예쁜 꽃, 예쁜 열매, 예쁜 벌들과 우리 강아지, 마당 저쪽에는 빨랫줄에 걸린 빨래에서 비가 똑똑 내리고, 두런두런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어른들의 소리, 내 친구가 뛰어오는 소리, ‘노올자’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 조용히 나무 밖으로 나가서 ‘알았다 ‘ 답가를 부르던 날들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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