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새로운 유행이 산골동네에 퍼졌다.
유튜브가 없던 그때는 도시에서 온 친척들이 인플루언서였다.
새로운 스타일의 옷과 파마, 영화, 노래, 게임, 책, 말투와 몸짓까지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솔밭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던 그 여름밤, 홍콩할매 귀신이 우리 마을에 오게 됐다.
서울에서 온 자매 중 첫째와 둘째가, 서로 빠진 부분을 채워가며 우리에게 홍콩할매 귀신에 대해 들려줬다.
홍콩할매 귀신은 원래 귀신이 아니었어.
고양이를 사랑하는 세련된 할머니였어.
진주 목걸이에 진주 귀걸이, 우아한 원피스 차림에, 늘고양이를 안고 다녔어.
영국에서 오래 살았던 홍콩할매는 고향인 홍콩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야, 비행기에서도 고양이를 안고 있으려고 작은 비행기를 사서.
그런데 홍콩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행기에 이상이 생겼어. 불꽃이 펑 나더니 날개가 부러지고 비행기가 추락했어.
할머니는 고양이를 꼭 안으려 했고, 놀란 고양이는 할머니를 붙잡으려 했어.
비행기는 땅에 떨어져 폭발을 했는데 그날부터 홍콩할매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앞모습은 할머니이고 뒷모습은 고양이 얼굴인데, 홍콩할매를 만나면 그 모습이 무서워도 절대 놀란 티를 내선 안 돼.
홍콩할매는 어디든 나타날 수 있고 나타나면 꼭 질문을 한대, 이름이 뭐냐, 여기가 어디냐, 몇 살이냐 등등
질문의 답이 마음에 안 들면 잡아가니까
안 잡혀가려면 꼭 이렇게 말해야 해.
자매 중 언니가 홍콩할매처럼 질문을 하면 동생이 안전한 대답을 했다.
“너 이름이 뭐냐? “
“홍둘째입니다.”
“몇 살이냐?”
“홍살이에요 “
“이게 뭐지?”
“홍레시인데 홍빛이 나와요.“
(후레시인데 불빛이 나와요.)
그러니까, 모든 질문을 ‘홍’ 자로 시작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애들이 질문을 하면 우리가 홍으로 시작하는 대답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어 헛웃음이 나지만 그때 나랑 동생에게 친척 자매는 생명의 은인 같았다. 더 연습이 필요하니 오늘 밤엔 제발 여기에 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모두 잠든 새벽에도 난 홍으로 대답하기를 머릿속으로 계속했다.
다음 날 엄마아빠, 외삼촌과 할아버지, 친구들에게 홍콩할매 귀신 얘기를 전해주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질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무도 잡혀가면 안 되니까.
여름방학, 친척들이 어떤 얘기를 해주려나 기대하던 밤들,
종이기방에 든, 미래 같은 선물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 애들의 옷차림을 얼마나 동경했던가,
서울 고모가, 어머어머 그랬니? 어머, 너무 웃긴다, 얘~하고 나에게 말할 때,
단숨에 내 얘기가 그렇게 재밌고 중요해졌다는 게 얼마나 간지럽고 신났던가.
여름방학은 축제 같았다.
개울물이 불어 물 달음박질 소리가 공기 아래 퍼지고,
맴맴 찌리찌리찌리 쉬잇쉬잇 마아아 하는 참매미, 유지매미, 애매미, 말매미 소리가 공기 위를 울리고,
도시에서 온 자동차가 마당마다 하나씩 놓이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놀이가 오선지 음표처럼 그려진지고,
한낮 시원한 바람에 떨리다 밤하늘 가득 별빛에 스타카토 되는 마음이 꼭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