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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덤불

by 고야씨


지금 생각하니 잘 모르겠어. 왜 그걸 덤불이라고 부른 건지, 누가 처음 그렇게 말했는지.

덤불은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이란 말인데, 우리의 덤불도 어수선하고 엉클어진 상태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붙였을까? 아니면 처음 그렇게 말한 아이는, 그때 상상 속 어떤 숲 속에 있었던 걸까?

어쩌면 덤불이라고 처음 부른 아이는 우리보다 앞선 시간에 살았을지도 몰라. 우리는 언니•오빠에게 덤불을 배웠는데, 그 언니•오빠 역시 언니•오빠에게 배운 걸 테니까. 난 늘 어떤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궁금하더라. 시상식에서 하는 진부한 소감 중에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있잖아. 누가 처음 주마가편을 수상소감에서 말했는지 그것도 궁금했어. 처음 그 말을 썼을 땐 굉장히 멋진 인용이었을 거 같아. 겸손하고 성실하고 단단한 사람 같고. 그러니 그 후로 너도나도 채찍 맞은 달리는 말이 되었겠지.




우리가 말하는 덤불은 얼음판 여기저기에 돌덩이로 구멍을 뚫고, 그 주변 얼음을 밟아서 개울물을 얼음 위로 퐁퐁 올려 얼음판에 넓게 퍼지게 하는 걸 말해. 덤불을 만드는 언니•오빠들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 내일도 놀아야 하는데 왜 이 좋은 얼음을 다 망가트리는 건지 당황했었거든. 내 친구랑 나는 얼음을 깨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이렇게 해야 얼음이 내일 더 단단하고 두껍게 언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얼음 조각이 튈 수 있으니까 저쪽으로 가있으라고 언니•오빠들이 말했어. 다정한 마음인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함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어. 얼음판이 다 망가지는데, 다 녹아서 없어질 거 같은데...


다음 날 아침밥을 먹자마자 친구랑 개울로 갔어. 우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면서 걸었어, 실눈을 뜨고. 개울에 도착해서 보니 와, 얼음판이 한눈에 봐도 훨씬 단단하고 더 두꺼워졌더라. 푸른빛이 희미하게 도는 뿌옇게 하얀색으로, 우리가 놀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어. 그 후로 나랑 내 친구도 얼음 놀이가 끝나갈 때는 덤불 만들기를 거들었어. 돌덩이를 찾아서 나르거나 장갑을 빌려주거나 물가에 있는 얇은 얼음에 나름대로 콕콕 덤불을 만들어보거나 하면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얼음판을 보는 게 더는 속상하지 않았어. 내일을 위한 덤불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어른이 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싶은 순간에 종종 덤불이 생각났어. 생각이 난 건지 생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퐁퐁 솟아오르던 개울물, 한 발씩 내밀어 박자에 맞춰 힘을 실어 얼음을 누르던 밑창에 체인이 달린 털장화들... 그때 얼음 위로 스르륵 얇게 퍼져나가던 개울물과 내 눈물을 겹쳐보는 거야. 오늘 밤은 춥지만, 얼음은 엉망이 됐지만, 눈물은 나지만, 그래, 조용히 잠을 자자. 자고 일어나자. 아침이면 눈물만큼 더 단단해질 거야. 내일을 위한 덤불일 거야, 비가 그치면 초록이 오니까.


어릴 때 우리가 만들었던 '내일을 위한 덤불'이 말한 내일은, 하루가 지난날만이 아니었구나 다 큰 나는 생각했었어. 기억은 그런 거지. 잔잔하다 요동치다 어딘가 내 안에 스며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순간순간 비치는 거. 어떤 건 그림자 속에서 늘 함께 걷는데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숨바꼭질인데, 숨은 날 찾아줘야 하는 줄도 모르고.


하나 둘 숨은 나를 모으고 있어. 이것도 내일을 위한 덤불일 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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