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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왜 착해요 2

by 고요한동산

​어른들은 마음도 몸도 힘든 시간이 되면 예민해진 마음으로 후회할 말들을 던진다.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차올라 있던 화를 만만한 자식에게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키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더 이상 크지 않는 것처럼 마음도 계속 자라지는 않나 보다. 어른이 보호자로 있는 동안은 자식은 늘 약자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듯이 부모의 사랑을 끝도 없이 갈구하는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약자가 된다.




데레사 씨를 포함해 동네 아줌마들은 '환이 엄마'나 '쌍둥이 엄마'하고 네 남매의 엄마를 불렀다. 경이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경이 언니의 엄마이기도 한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내 이름은 얼마나 불리나 싶어 갑자기 세어보기 시작했는데 언니이름만 불리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도 다르지 않았다. 데레사 씨가 언니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저녁 먹으라고 우리를 불렀다. '또 언니만 부르지? 나는 안 부르고.. 내 이름 부르기 전까지는 절대 밥 먹으러 안 갈 거야.'


배에서는 눈치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오기가 생겨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렸다. 집이 넓어봤자 방 옆에 방이니 내가 눈에 안 띌 리가 없는데도 데레사 씨는 밥을 먹으러 안 오는 나를 혼내지도 부르지도 않고 내버려 두었다.


오기를 부린 것이 아까워 배가 고파도 참았다. 다음날 아침도 어김없이 데레사 씨는 언니 이름을 불렀다.


'절대 안 갈 거야.' 오기가 발동했다.


데레사 씨가 못 이긴 척 방으로 와서 물었다.

"아침도 안 먹을 거야?"

"엄마가 나 보고는 밥 먹으라고 안 했잖아! 언니만 불렀잖아! 내가 밥 먹으러 안 가도 찾으러 안 오고.."


말하다 보니 서러워졌다.

"1번 부르면 2번 오는 거지, 꼭 다 불러야 되나? 밥 먹으러 오라는 얘기지 결론은!"


"1번만 불렀으니 1번만 오라는 거 같잖아"


"알았다. 이제 니 이름 꼭 불러줄게. 이제 밥 먹을 거지?"


"응"


뭔가 엎드려 절 받기 같았지만 배가 고팠으므로 밥상 치우기 전에 얼른 가서 밥을 먹었다. 꼬맹이가 객기를 부리는 게 웃겼는지 데레사 씨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모른척했다.


그다음 날부터 데레사 씨는


'2번! 일어나! 2번 밥 먹어! 2번!' 하며 계속 2번을 불러댔다.


그것이 어찌나 성가신지..


"엄마. 2번 그만해! 그냥 1번 불러"


"왜? 너 불러달라며?"


"됐어. 그만해. 그냥 1번 불러"


데레사 씨를 이겨먹을 수가 있을 턱이 없지. 결국 꼬리를 내린 나는 엄마가 언니를 부르면 그냥 한 세트거니 생각하며 밥 주면 밥 먹고 아침에 언니 이름을 부르면 알아서 일어났다.




경이언니와 평상에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언니는 아리랑, 쓰리랑도 너무 잘하고 공기를 시작하면 내일까지 놓치지 않고 할 것 같았다. 언니가 공기 하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언니가 꺾어 잡은 공깃돌이 바닥으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경이 언니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가슴을 움켜잡고 몸을 움츠렸다.


"언니! 왜 그래? 어디 아파?"


"심장.. 심장이.. 하.."


언니 얼굴이 일그러지며 평상에 쓰러졌다. 누군가 쓰러지는 모습을 처음 보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허둥되던 나는 쏜살같이 달려 데레사 씨에게 갔다.


"엄마, 엄마! 경이 언니 쓰러졌어"


데레사 씨가 쫓아 나와 경이언니를 일으켰다.


"경이야! 경이야! 정신 차려봐"


데레사 씨는 쌍둥이 엄마와 아빠한테 전화를 해 알리고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웃으며 공기놀이하던 언니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변해 쓰러진 평상 주위를 똥 마려운 똥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하며 엄마와 언니가 빨간 대문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데레사 씨가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경이언니는?"


"언니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


"어디가 아픈데?"


"심장이 좀 안 좋아"


경이언니는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났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어렵게 심장병 수술을 받았고, 병과의 싸움에서 해방되었다 믿었는데 언니가 갑작스레 쓰러진 것이다.


언니가 아기였을 때 받은 심장병 진단은 그 자체로 사망선고와 같았다. 아줌마는 어린 경이언니를 품에 안고 동분서주하며 치료를 위해 뛰어다녔다. 1980년대 초, 심장병 치료 기술은 아직 발전 초입에 불과했고, 수술을 시행하는 병원도 찾기 힘든 때였다. 설령 병원을 찾더라도 막대한 수술비는 가난한 이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고 대부분의 심장병 어린이들이 돈이 없어 수술도 못해보고 죽던 시기였다. 아줌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경이 언니도 곧 죽을 거라고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대신할 쌍둥이를 임신했다.

자식을 포기한다는 건 어떠한 마음일까.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이다.


경이 언니의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느 날 데레사 씨가 신문을 보다가 불우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수술 지원 캠페인 기사를 보고 아줌마에게 쫓아왔다.


"환이 엄마! 이 기사 좀 봐!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기금을 모은다네. 형편이 어렵다는 거 자료내서 통과하면 수술비 지원을 해준다고 하네. 경이 수술시킬 수 있겠어."


데레사 씨가 얘기해 준 바로는, 1983년 낸시여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심장병 어린이 2명을 미국에 데리고 가서 심장병 수술을 지원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심장병 어린이 돕기 캠페인이 일어났다고 한다. 불우한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비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이 시작되었고 영세민 확인이 되면 수술비 지원 신청이 가능했던 것이다.


데레사 씨는 영세민 인증을 위해 구청을 분주히 오가며 필요 서류를 떼서 아줌마에게 건네주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병원을 찾아 헤매던 그때처럼, 아줌마는 경이 언니의 수술을 위해 다시금 분주히 뛰어다녔다. 어른들의 이러한 노력은 경이 언니의 수술 성공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경이언니가 죽음의 손을 잡지 않고 빨간 대문의 주택에 남아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힘겹게 살려놓은 생명이었으나 시간이라는 망각의 장치는 간절했던 그 마음마저 잊게 만들었다. 언니가 죽을까 봐 그렇게도 애가 닳던 아줌마는 집에 오면 경이언니가 미워 모진 말의 화살을 쏘아 언니의 심장에 상처를 냈다.


"자네 경이한테 왜 모질게 굴어? 경이처럼 착한 딸이 어디있 다고?"

데레사 씨는 어느 날 쌍둥이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니에요. 쟤가 가만 보면 얼마나 얄미운지 몰라요. 저한테는 말도 잘 안 하고 지 아빠한테 가서 살살 애교 떨면서 여우같이 굴고."


"애교 좀 떨어야 딸이지. 아들들한테 하는 반만큼이라도 해줘. 똑같은 자식인데.."


"내 딸인데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그게 내 맘대로 안됩니다, 형님."


죽을 줄 알았던 딸이 살아나자 누구보다 기뻤을 것이다. 허나 아픈 딸을 안고 마음 졸이며 동분서주했던 고달팠던 마음이 무의식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원망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을지 모른다. 딸의 생존을 보장받자 그제야 버튼을 누르고 꾹꾹 눌러 숨겨놓았던 원망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한 게 아닐까?


사람에게는 마음의 전환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은 이성으로 잡고 있던 숨기고 싶던 마음을 드러내게 한다. 12시가 되면 누더기 신데렐라로 변하는 것처럼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리는 숨겨놓았던 누더기의 본모습으로 변화된다.

우리는 본모습과는 다른 이성으로 무장한 제2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니까.


경이언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행히문제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쌍둥이들이 놀러 나가고 조용한 빨간 대문 평상에 앉아있는 언니를 보았다. 병원에서 막 돌아와서 그런지 창백한 얼굴에 몸도 더 갸냘퍼보였다. 옆에 슬며시 앉아 생각에 잠긴 언니를 바라보니 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미소 짓는다.

언니는 늘 말없이 이렇게 웃기만 한다.


"언니, 이제 안 아파?"


"응. 괜찮아. 가끔 그래. 몇 년 전에 수술받아서 이 정도 아픈 건 금방 나아. 옛날에는 정말 아팠거든 "


"언니 대단하다. 나는 어제 넘어져서 무릎 살짝 까진 것도 너무 아픈데.."


쓰러질 만큼 아픈 건 어떤 걸까 겪어보지 않은 평범한 나는 언니의 고통이 궁금했다. 몸이 안 좋아 이 정도면 쓰러지겠는데 했던 날, 너무 건강한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질 만큼 아픈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구나 싶어 경이언니의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착한 사람들은 말을 아껴 자신의 가슴으로 삼킨다.

언니는 착한 사람이었다.

자신도 어리면서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아무리 혼나도 엄마에게 화내지 않고 아파도 괜찮다고 하는 언니를 보고 물었다.


"언니는 왜 그렇게 착해?"

"착하지 않아. 그냥.. 약할 뿐이야."


약할 뿐이야 하고 말한 경이 언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언니, 이제 아프지 마! 공기놀이 알려줘야지. 언니만큼 잘하는 사람 없단 말이야!"

"알겠어~"

언니는 젖은 눈망울로 나를 보며 선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착한 것과 약한 것.

이것은 같은 걸까?


자신이 곪아가는 착함은 한없이 약한 것이다.

수동적인 것. 길들여짐.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탓만 하는 것. 트린 것을 틀렸다고 하지 못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싸움이 싫어 상대를 맞추는 것.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 품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약함이다.

약한 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짐승들의 무리에서 강자가 아니면서 약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부단히도 고민해 왔다.


데레사 씨는 강하지만 착하다.

나는 이러한 착함을 닮고 싶었다.

마음의 성장이 멈춘 어른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여 지혜로운 노파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지혜로운 노파!

얼마나 근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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