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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왜 착해요 1

by 고요한동산

빨간 대문의 주택은 원래 오래된 여인숙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낡은 건물을 사들여, 여인숙 간판을 떼어내고 낡은 곳을 손수 고치고 대문을 달아 빨간 페인트를 칠했다. 방 두세 개를 터서 제법 넓은 방을 만들고 단칸방들과 함께 보증금 없는 월세로 내어 놓았다.


빨간 대문의 주택 뒤쪽에는 직물공장이 있어서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이 값싼 여인숙에서 묵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끗한 여관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낡은 여인숙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즈음에 저렴히 내놓은 여인숙을 사들여 월세방으로 바꿔 방을 내놓으니 힘겨운 사람들이 월세방에 와서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벌어 이사 나가곤 했다. 남들 아파트로 모두 이사 갈 때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겨웠을지 상상이 될까 모르겠다.


빨간 대문의 주택의 단칸방에 살던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 나가고 새로운 가족이 이사 들어오고 또다시 아파트로 이사 가는 일이 반복되자 언니와 나는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 아파트로 이사 가요?"

"이사 언제 가요?"

"우리는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요?"

"아파트로 이사 가요."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졸라댔다.


​ 결국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빨간 대문의 주택을 리모델링을 하고 팔겠다는 야망찬 계획으로 드디어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이야 청소업체 불러다 입주청소를 한 번에 끝내지만 그때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창문을 닦고 바닥을 닦으러 학교 끝나고 이사 갈 아파트로 향했. 고등학교 3년을 넓은 아파트에서 달콤하게 보냈다. 친구들도 맘껏 불러와 놀고 전망 좋은 고층에서 놀이터뷰도 즐겼다.


그러는 동안 빨간 대문의 주택은 결국 팔리지 못했고 그린벨트에 묶인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리모델링된 빨간 대문의 주택으로 돌아갔다.


"싫어! 돌아가기 싫어. 싫어~ "

언니와 나는 엉엉 울며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서럽게 하염없이 울었던가? 그랬던 거 같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의 드레스는 누더기 옷으로 변하고 화려한 마차와 말은 호박과 생쥐들로 변한다.
​사람의 마음도 경계의 종을 치면 관대함에서 인색함으로, 선함에서 악함으로 그 모습을 바꾼다. 이 순간은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순간은 나쁜 사람이 되고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폭발하고 이 사람에게는 잘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모질게 대한다. 완벽하지 않은 부족함으로 우리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핸드폰에 찍힌 아이들의 사진을 보다가 데레사 씨가 찍어주던 옛날 필름 카메라가 생각이 났다. 데레사 씨는 남는 건 사진이라며 어디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메라에서 필름을 빼내 사진관에 인화를 맡기고 그다음 날 사진을 찾아와야 하는 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데레사 씨는 번거롭더라도 사진을 인화해서 차곡차곡 앨범에 넣어 보관했다. 비닐을 쭉 뜯어 끈적끈적한 종이에 사진을 차례차례 붙이고 다시 비닐을 밀리지 않게 쫘악 붙여놓으면 세월이 흘러도 사진 속 우리 모습은 앨범 속에 그대로 남아 변하지 않았다.


몇 권의 앨범 속 많은 사진들 가운데 '거기서 봐. 사진 한 장 찍자'해서 어쩔 수 없이 우르르 서서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찍혀있던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어디를 다녀온 건지 사진 속 언니와 나는 한가닥 한가닥 바짝 당겨 엮은 디스코 머리를 하고 데레사 씨가 직접 재봉틀로 만들어준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예쁜 레이스 반양말을 신고 핑크색 구두를 신은 우리는 둘 다 약속한 듯이 오른쪽 레이스 양말이 발목까지 돌돌 말려 내려가 있었다. 우리 옆으로 반바지에 멜빵을 맨 똑같이 생겨 구분하기 힘든 일란성 남자형제, 그리고 뒤에 예쁘장하게 생긴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중학생 남자아이 하나가 함께 찍혀있었다. 누구더라 누구더라 하며 한참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게 또 누군지 떠오르는 걸 보니 뇌의 기억장치가 아직 작동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와 함께 있던 사진 속 아이들은 쌍둥이네라고 불리던 가족의 네 남매였다.


리모델링 전 할머니 할아버지의 빨간 대문의 주택은 다른 단칸방에 비해서 제법 넓은 월세방이 세 개 있었는데 (단칸방 3개를 터서 넓히고 아궁이와 수도시설이 한 곳에 있긴 했어도 샤워가 가능한 방) 네 남매는 그중 가장 끝 방에 살았다.


경이 언니, 언니의 오빠, 일란성 남자 쌍둥이, 엄마, 아빠 여섯 식구가 살았으니 넓다고 해도 사실 단칸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경이언니는 학교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오빠와 동생들 밥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고 쌍둥이들이 어질러놓은 집을 정리했다. 일하는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언니는 노력했다. 언니가 청소를 해놓으면 방에서 뛰어놀던 쌍둥이들은 눈치는 바닥에 붙여놓았는지 과자봉지를 들고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놀며 과자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며 다녔다.


"얘들아. 엄마 올 시간이야. 과자 좀 그만 먹어"


누나 말을 들을 거였으면 애초에 과자봉지를 뜯지 않았겠지.


쌍둥이들은 엄마에게 늘 귀염둥이들이었으니 해맑고 순수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 같았다. 두 마리의 야생동물들 꽁무니를 쫓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두 마리의 야생동물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아기 강아지가 되어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갔다.


"우리 쌍둥이들 잘 놀았어?"


"네~~"


쌍둥이들이 엄마에게 가서 안기면 언니는 작은 목소리로 "다녀오셨어요?" 하고 멀찍이 서서 인사를 했다. 쌍둥이 엄마는 집을 둘러보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경아! 엄마가 집 좀 치워놓으라고 했지? 그리고 애들 밥 안 주고 과자 먹였어?"


"아니요. 치웠는데 쌍둥이들이 과자를.. 밥.. 먹었.."


"아 답답해. 우물쭈물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쌍둥이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경이 언니만 혼냈다.

혼나는 이유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집이 더럽다고 쌍둥이들 제대로 안 챙겨줬다는 둥 뭐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데레사씨가 나에게는 시키지 않을, 혼내지도 않을 그런 일들!


세 아들과 엄마 사이에서 외로운 저녁을 보내고 나면 늦은 밤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에서 유일하게 경이언니를 아끼던 아빠가 너무나 반가워 얼른 달려가 아빠~~ 하며 달려갔다. 늦은 밤 아빠 어깨를 주물러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언니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계집애가 아빠 일하고 와서 힘든데 왜 그렇게 옆에서 쫑알쫑알 돼? 시끄럽다. 그만 가서 자."

쌍둥이 엄마는 그 모습이 얄미워 핀잔을 준다.


​"아픈 애를 왜 못잡아 먹어서 난리고?"

그 말에 쌍둥이 엄마는 애가 아픈 게 자신의 탓도 아닌데 자신을 탓하는 것 같아 괜스레 딸이 더 미워졌다.


쌍둥이 엄마의 경이 언니를 향한 미움 가득한 눈을 보고 어린 나는 의아했다. 세상은 내가 지닌 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빨간 대문 안에서 경이 언니는 억울함을 삼켰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차마 떨어뜨리지 못한 눈물을 머금고 웅덩이 같은 눈으로 웃어주곤 했다.

아줌마를 향한 언니의 큰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쳐다보든 아줌마는 신경도 안 쓰겠지만 악의 무리에 대항하듯 적개심을 가지고 아줌마를 노려보았다.


​어른들은 마음도 몸도 힘든 시간이 되면 예민해진 마음으로 후회할 말들을 던진다.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차올라 있던 화를 만만한 자식에게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키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더 이상 크지 않는 것처럼 마음도 계속 자라지는 않나 보다. 어른이 보호자로 있는 동안은 자식은 늘 약자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듯이 부모의 사랑을 끝도 없이 갈구하는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약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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