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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와 금이 자매 1

by 고요한동산

빨간 대문 밖의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방 딸린 가게가 있었다. 꼬맹이가 있던 수선집이었는데 꼬맹이 동기가 이사를 나가고 그 집에 은이, 금이 자매가 이사를 왔다. 가게와 방 두 개를 터서 세를 놓은 거라 제법 컸다. 은이 언니는 날 선 고양이처럼 좀 무서웠지만 나보다 두 살 많은 금이 언니는 털털한 성격으로 나와 잘 놀아줬다.

키가 큰 은이언니와 금이언니를 보고 "다들 부모님이 다 크신가 보네"하고 말했다. 하지만 자매의 부모님은 자매들보다 작았다.

자매의 아버지는 척추가 눌리고 휘어서 등이 튀어나오고 어깨와 귀가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매의 엄마는 아저씨보다는 컸지만 쩔뚝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인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더욱 작아보였다. 그리고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수어로 말했다. 아저씨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면 “인사성도 밝지!”하며 칭찬해 주었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굵은 저음이었는데 목소리가 울려 아나운서 같았다.

학교 다녀와서 주로 두 자매만 집에 있었지만 가끔 저녁 먹고 언니 집을 기웃기웃 되다 보면 아줌마와 아저씨가 와있었다. 아줌마는 그런 나를 발견하면 이리 오라고 손짓하며 간식거리를 내어주곤 했다. 아줌마는 손과 표정으로 말을 건넸고 소리 내어 말해도 으~ 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 뭐라고요? 네?” 하고 여러 번 되물으면

금이언니가 대신 말했다.

“저녁 먹을 건데 같이 먹을 거냐고!”

“아~ 나 밥 먹었는데.. 그럼 언니 내일 같이 놀자!”

아쉬운 듯 집으로 돌아오니 데레 씨가 “저녁 늦게 남의 집에 가는 거 아니야! 알겠어?” 하고 말했다.

“왜?”

“아줌마 아저씨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가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저녁에는 가지 마 알겠지?”

“알겠어”

목소리 좋은 아저씨와 챙겨주는 착한 아줌마가 좋아서 저녁에도 가고 싶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답을 한다.


눈치 없는 아이는 타인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걸 향해 나아간다. 말라깽이 꼬마는 눈치 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기웃되며 남는 시간을 때웠다.

동네에 놀 사람만 있다면 행복한, 눈치 따위는 장착하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할 때였다.


언니네 집에서 놀고 온 어느 날 아저씨와 아줌마의 모습에 대해 데레사 씨에게 물었다.

“엄마, 아저씨 등이 이상해!”

"척추가 아파서 그런 거야"

"아줌마는? 아줌마도 어디가 아픈 거야?"

"아줌마는 귀가 안 들려서 말을 못 해! 그래서 수어를 하는 거야"

"엄마! 아줌마는 손가락도 아파! 하나가 없어~~ 엄마 못 봤어?"

"봤어.."

"아저씨, 아줌마 힘들겠다."

"그래도 이쁜 딸 둘이 손발이 되어주니 얼마나 행복하겠어?"

데레사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두 자매의 집에서 큰 소리가 난 적이 없었다. 봉칠이 집과 경이언니 집에서 나던 날이 서있던 크고 높은 무서운 목소리가 아닌 따뜻하게 마음을 울리던 아저씨의 다정한 목소리와 아줌마의 고요한 따뜻한 눈빛이 자매의 집을 감쌌다.


자신들의 하루일과를 재잘거리며 이야기하는 자매의 모습을 자매의 엄마 아빠는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언니야! 놀~자"

어김없이 언니집 앞에서 금이언니를 불렀다.

"들어와! 집에서 놀자"

언니네 집에 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아이스크림통에 우유 넣고 음료수 넣고 얼려 하나씩 빼먹었다.


엄마아빠놀이도 하고 유치원놀이도 하고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꼽표 발맞추기(사방치기), 인형놀이, 숨바꼭질, 땅따먹기, 딱지치기, 딱지 날리기, 인형놀이, 종이인형 등 재미있는 놀이가 많아 친구만 있다면 심심할 틈 없이 온몸으로 놀 수 있었다.




집에 피아노가 거의 없던 시기에 어느 날 집에 피아노가 있는 아이 H가 이사를 왔다.

"우리 집에 피.. 피아노 있는데 내일 가서 쳐.. 쳐볼래?"

"와! 피아노가 있어? 좋겠다"

금이언니와 함께 다음날 H 집에 놀러 갔는데 커다란 피아노가 넓은 거실에 놓여있었다.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빨간 대문의 주택에서 가장 큰 방의 두 배는 커 보였다.


H 엄마가 집에 계셔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섰다.

"어서 와~~ 너희 쿠키 좋아하니?"

"네!"

H 엄마가 내준 쿠키를 먹고 나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 피아노 쳐봐도 돼?"

"한 번만 쳐!"

"한 번만?"

"피아노 마.. 망가진단 말이야"

하면서 H는 엄마 눈치를 봤다.

"알겠어"

금이언니와 나는 피아노를 한 번씩만 쳐보고 그 아이가 피아노 치는 걸 구경했다.

아줌마는 자신의 딸이 피아노 치는 걸 비디오카메라로 계속해서 찍었다.

"그게 뭐예요?"

"어머! 이거 처음 보니? 비디오카메라인데 영상을 찍는 거야. 기록에 다 남는단다. 장면만 남는 사진 하곤 다르지!"

"와~~ 만져봐도 돼요?"

"안돼~~ 망가진단다~"


H의 집을 나와 데레사 씨에게 물었다.

"피아노가 그렇게 쉽게 망가져? 피아노 치게 해 준다고 오라고 해놓고 망가진다고 한 번만 치게 해 줬어"

"누가?"

"목욕탕집 2층에 이사 온 애"

"아~~ 거기! 피아노 2층으로 어째 옮겼대? 세상에!"

"그 애 엄마가 걔 피아노 치는걸 계속 찍는 거야. 그거 사진이 아니고 움직이는 거 다 찍힌대!"

"아 비디오카메라?"

"어! 그것도 만져보고 싶었는데 망가진다고 못 만지게 했어!"

"누가?"

"아줌마가"

"똥까고 있네 진짜! 망가지면 꺼내질 말아야지. 다시는 가지 마라!"

"피아노 치고 싶은데 가면 안돼?"

"피아노 치고 싶으면 피아노 학원 가서 배워"

"오예! 오예! 엄마 최고"

그 아이 덕분에 언니와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생겼다.


"우리 집에 가서 피.. 피아노 칠래?"

H가 말했다.

"우리 집에도 이제 피아노 있어!"

이 말을 하고 보니 당당한 내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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