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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an 03. 2023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

오늘은 학부모 아니고 작가!

'일이 점점 커지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프로젝트 계획 상 7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면 마지막 화룡점정의 계획은 이랬다. 본인이 만든 책을 들고 교실에 들어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읽어주고 생각을 나누는 동아리기에, 2022학년도 마지막 활동일에 맞춰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았다. 눈앞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11월 중순을 넘어 몇 장의 원고를 다른 학부모 몇 명과 학교 사서 선생님께 보여 드렸더니, 한 학급에 한 권만 선보이기엔 너무 아깝다는 반응이 있었다. 우리 스스로도 '생각보다 꽤 퀄리티가 높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던 때라 일을 좀 키워 보기로 했다.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학생을 다 모아 놓고 북토크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한 학년 한 학급인 작은 학교인지라 전체 학생이라고 해도 70명이 안된다.)




넓고 높은 체육관에서 전교생을 모아 놓고 하느냐, 교내 다목적 교실에서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눠서 진행하느냐의 옵션이 있었다. 체육관은 스크린이 크고 무대와 조명, 음향 기기가 최신식으로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인원에 비해 공간이 너무 넓어서 집중하기가 어렵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 북토크 작가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다목적 교실은 공간이 좁아 전교생이 다 모일 수도 없고 빔 프로젝터나 음향기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진 않지만, 평소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바닥 매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고 앞에서 책엄마, 책아빠가 읽어주는 분위기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는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눠서 80분을 두 번 진행해야 했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다목적 교실이었다. 기자재뿐 아니라 우리의 컨디션도 걱정되었지만, '아이들과의 분위기'를 우선시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최대한 무대와 관객의 구분 없이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공간의 부족함은 멤버들이 알아서 채워 주었다. 


현직 조명 디자이너 및 기술감독인 Y가 키 낮은 테이블 조명을 집에서 가져왔고, 진행 흐름에 따른 조명 스위치를 컨트롤했다. P는 집에 있는 키 큰 조명에 라탄 장식까지 해서 가져왔다.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J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짊어지고 왔다. 거기다 J가 집에서 가져온 테이블보를 덮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전직 강사 및 미디어회사 직원이었던 P는 책의 내용을 PPT 화면으로 옮겼는데, 자연스럽게 책 넘김 효과에 음악까지 삽입해 감탄을 자아냈다. 스피커가 성능이 약하다며 L은 곧장 집으로 가 집에 있는 홈시어터 스피커를 떼어 왔고, A는 체육관으로 가서 이동식 스피커와 마이크를 번쩍 들고 왔다. 설치된 빔 프로젝터는 화질이 낮아 학부모회장에게 전화했더니, 한달음에 휴대용 고성능 빔 프로젝터를 갖다 주었다. 사서 선생님은 행사의 분위기를 뽐내는 현수막과 식순, 책 안내 포스터를 준비해 주셨고 7권의 책을 전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 나는 전날 이 행사를 위해 파주 인쇄소에 가서 직접 책을 수령해 오고, 북토크 진행 구성과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냥 한마디로 어벤저스였다. 


미리 짜인 각본도 없는데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 누가 스피커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얼른 가서 가져올게.'하고 총알처럼 다녀왔다. 마이크가 안 된다고 하면 건전지를 확인하고 행정실에 달려가 새 건전지를 받아 왔다. 리허설하겠다고 하니 알아서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는 무대 커튼이 거둬지는 효과가 시작됐다. 다른 사람의 리허설도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연신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그 바쁜 아침에 애들 챙겨 등교시키면서 빵과 커피를 챙겨 와 나눠준 것까지 얘기하려면 밤 새야 한다.



    


12월 23일. 북토크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학부모가 아닌 작가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를 시작했다.

먼저 오프닝을 하면서 7명이 약 3개월 동안 각자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실물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1부에서는 4명의 작가가 한 명씩 자신의 책을 순서대로 읽고 무대로 모두 나와 토크 시간을 가졌다. 2부에서는 3명의 작가가 동일하게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간을 마련한 것은 너희가 알았던 누구네 엄마, 아빠가 책을 만든 것처럼, 너희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였다. 


아이들은 책 속에 나오는 친구 이름, 동네 이름, 길고양이 이름이 나오자 더 몰입하며 보고 들었다. 질문을 안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서로 질문하겠다고 경쟁을 했다. "OOO 작가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아이들이 불러주는 작가라는 말이 더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교장 선생님은 매번 다양하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며, 그것이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하셨다. 한 선생님은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받으셨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인사를 하셨고, 다른 선생님들도 참 멋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정말 마지막 미션이었던 북토크까지 무사히 끝냈다. 우리에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그림책 한 권이 남았고, 함께 전우애를 불태웠던 사람이 남았다. 3개월 동안 그 고생을 하고도 내년에 뭘 할지 생각해 놓은 것이 있냐며 반짝이는 눈을 하고 묻는다.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하자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뭐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내년엔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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