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직장생활을 하며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다가 소위 말하는 전업맘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정말 매일매일 즐겁고 평화로울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은 질문이 피어올랐다.
"나 이제 뭐하지?"
엄마니까 일단 기관에 다니는 미취학 아동 두 명의 등원과 하원을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 등원과 하원 사이의 시간 5~6시간 정도가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 황금 같은 시간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만두고 뭐 할 거냐고. 그래서 당차게 말했던 것은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책 보고 싶다.'였다. 놀러 다니고 여행 가도 모자랄 판에 하루 종일 책 보고 싶다는 나를 누구는 기특하다는 듯, 누구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것 또한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생기면 또 할 일도 같이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애꿎은 가구 배치가 마음에 안 들어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하다가 하루가 다 가기도 하고, 이제 애들 교육에 좀 더 힘써야겠다는 의지로 책장 정리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렇게 안 하던 집안일 하다가 피로가 누적되어 또 하루는 몸살이 나서 감기로 앓아누워 있느라 시간이 다 가기도 한다.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을까?"
무엇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강박이 아닐까?
집에서 노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하고 더 나아지게 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나는 매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임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초조함이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하는 불안함이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책임감이다.
이것을 인식한 이후,
"그래,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밖에서 일하던 사람이 집에 있으려니 괜히 이리저리 들쑤시는 거지." 그러다 자꾸 채용 사이트에 눈길이 간다.
생계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채용 기업과 업종, 직무, 대우 등을 두루두루 살피다가, 문득 '다른 곳에 어중간하게 입사하려면 내가 왜 그만뒀을까'하는, 후회까지는 아닌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다시 말하지만 후회는 아니다. 그래서 채용 사이트 구경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굳건히 마음을 다잡고 교양을 좀 쌓을까 해서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클립을 클릭했다. '경력단절 기간에 경력을 쌓는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워킹맘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그 기간을 알차게 경력을 쌓고 또 수입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었다. 수기 공모전이나 체험단, 블로그 마케팅 등 시상금도 받고 경력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들을 해 보라는 조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또 혹해서 알려주는 카페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또 포털 검색을 해서 공모전 등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래 애썼다. 그래서 시간과 공을 날렸다. 남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한테 즐거울 수는 없다. 그리고 남도 하루아침에 한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연습하고 움직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조언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홍보용 글을 좋아하지 않아 시도해 보지 않기로 했다.
집안 정리도 이제 애들 장난감 수납장과 주방에 있는 만물 창고 수납장만 이번주내로 정리를 마치면 더 이상 건들지 않기로 했다.
이 여러 가지를 끊임없이 찾아보고 엎어보고 움직이느라 내 손에는 면역력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수포까지 돋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