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MBTI 중 S와 N을 가르는 대표적인 질문.
감각형인 S 유형은 대개 사과를 보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빨갛다, 둥글다, 덜 익었다. 정도를 떠올린다고 한다. 반면, 직관형인 N 유형들은 온갖 연상들로 머릿속에 가지를 친다. 심지어 사과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단어일지라도.
나는 사과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과.
누군가 명랑하게 똑! 소리를 내며 수확했을 사과.
내가 사과 수확 장면을 어디서 봤더라.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은재네 집이 과수원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과수원 체험을 해본 적이 없다. 사과 따기는 못 해봤어도 유치원 때 고구마 캐기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엄마가 그 고구마로 맛탕을 해줬을 거야, 아마. 엄마는 그때부터 요리를 참 잘했었다. 나는 엄마를 닮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요리가 직업일 정도니까. 엄마는 언제까지 요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할까? 내 나이 서른쯤 되면 내 월급으로 충분히 생활비를 보태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현실은.. 내 나이 스물아홉. 나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부모에게 손 안 벌리면 그것만으로 다행이지. 조금은 부끄럽고 많이는 울적하다. 무능한 것도 불효겠지.
이번에 나는 사과에서 시작해 불효자식에 도착했다. 더 하자면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는데-과수원 주인이 농부가 된 계기와 이루지 못한 진짜 꿈, 가업의 대를 잇느냐 마느냐로 인한 자식과의 갈등 등등-그러면 진짜 끝도 없다.
조용하다 못해 과묵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내 머릿속은 온갖 질문과 상상들로 복작복작하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결단력은 적어진다. 부족한 결단력은 우유부단, 어색, 부자연스러움 그 비스무리한 것들로 이어지는 것 같다.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나는 소심함과 약간의 뚝딱거림을 얻었다. 자칭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소심인-일명 엄청나게 소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교통만큼 일상적이면서 편해지지 않는 장소가 또 있을까. 출퇴근으로 달에 사십 번은 오르내리는 지하철이 특히 그렇다.
대표적인 소심인은 지하철에서 맞은편 사람과 눈이 마주칠까 봐 허공을 보곤 한다. 사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괜히 눈 둘 데가 없어 같은 정거장 전광판을 몇 차례나 과장된 몸짓으로 쳐다봐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도 그랬다.
여덟 정거장쯤 되려나. 목적지인 시청역에 도착할 때까지 괜히 졸린 척 눈을 감고 등을 기댔다. 하나도 졸리지 않은데도. 지하철을 타면 이렇게 나조차 의도를 알 수 없는 자는 척을 하게 된다.
다음 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눈을 뜨고 내리려는데...
참, 가끔 내 동작이 단계별로 구분되어 보일 때가 있다. 딱 이렇게 지하철에서 앉아있다가 내릴 때. 한 동작 한 동작 끊어서, 기계처럼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딱 봐도 아주 뻣뻣하다. 몸속에서 내 움직임을 조이스틱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1. 팔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다.
2. 가방끈을 잡는다.
3. 가방을 들어 올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 손잡이에 머리를 부딪히더라도 당황하지 말 것.
하여튼, 목적지에 도착해 일어나려는데 웬걸, 누가 머리카락을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소심한 사람들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등을 기대고 있는 사이에 유리창과 의자 사이 틈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낀 것 같다. 이미 지하철은 승강장에 들어섰다. 내려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섣불리 잡아 빼려고 했다간 허우적대는 나를 보고 누군가 (감사하지만) 원치 않는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적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한테 시선이 집중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창틀과 실랑이를 벌이다 못 내리고 남겨질 수도 있다.
2호선 성수행 7-3번 칸에서.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나에게 내리 꽂히는 뜨거운 시선들을 견디며.. 그 이상의 상상은 괴로우니 여기서 관두도록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로 머리를 당겨 힘껏 일어난다.
우두득. 머리카락 몇 가닥이 단번에 뽑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프지 않냐고? 글쎄, 긴장감이 고통을 마비시켰나 보다. 종종 있는 일이다. 가끔은 긴장감이 마취제에 버금가는 효과를 보일 때가 있다. 소심인의 기적이라고 하자.(오버) 그대로 일어나 뒤돌아보지 않고 내린다. 등 뒤로 길게 나풀거리고 있을 머리카락 최소... 세 가닥쯤을 상상하며.
대담한 누군가에게는 지하철 의자에 머리카락 꼈었어. 끝. 정도의 기억에도 안 남을 시시한 해프닝일 수 있지만, 소심인의 입장에서는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자 적절한 위기 대처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오버)
그러고 보니 내 인생 총안간힘의 10프로 정도는 얼굴이 안 빨개지게 애쓰는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부끄럽지만 그것보다 더 부끄러운, 아니 쪽팔린 일은 빨개진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보다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걸 드러내는 게 싫은 것 같다.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수백 아니 수천 명 앞에서도 마이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긴장감은 얼굴이 빨개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내 기준 소심한 사람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원 오브 탑 3.
"얘, 너 얼굴 빨개졌어."
도대체 어쩌라고! 나도 이미 빨개진 얼굴을 당장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얼굴이 빨개졌다는 지적은 날 더 무안하게 만들 뿐인데. 스탠드처럼 간단하게 불을 켰다 꺼는 스위치가 귀 뒤쯤에 달린 줄 아나 보지?
이런 말을 던지는 친구들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말을 굳이 할 바에는 그냥 못 본체나 해주면 고맙겠어.
그렇지만 소심인은 그저.. 말없이 붉어진 얼굴을 조금이라도 숨기려 고개를 숙일뿐이다. 마치 숨을 때 머리를 구석에 파묻는다는 어느 똑똑하지 못한 새 이야기처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사람도, 이렇게나 소심한 사람도 있다는 거다. 이 글을 읽고 어,나 뭔지 알어.. 라는 생각이 들거나 공감을 느낀다면 소심인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반갑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그쪽도... 소심인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