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행인 일이다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도 다행인 일이다. 누구나 돌아갈 집은 있지만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다는 건 다른 일이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어릴 때 부모님은 맞벌이로 항상 늦게 들어오셨고, 보고 싶은 동화책을 읽어줄 사람도 없었다. 나이차가 거의 나지 않는 내 동생은 초등학생이 되어서까지 낮잠을 자다 엄마를 찾으며 울면서 깼다.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은 지그시 밟아두고 태연한 척 우는 동생을 달랬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지하 단칸방이었는데, 어느 위치에 어떤 가구가 있었는지 아직까지도 너무나 생생하지만 지금의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집이다.
그 후 여러 번의 이사와 전학이 있었지만 ‘우리 집’이라는 편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진짜 우리 집’은 결혼으로 독립해서 얻은,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원하던 집은 동생과 블록놀이 할 때나 만들어봤지,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집을 갖는다는 건 차고 넘치도록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집에서는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큰 소리도 없었고, 부재도 없었다. 늘 기다려주는 서로가 있었다. 나쁜 말이 오가지 않는 대화, 웃음소리, 취향이 담긴 식기, 먼저 집에 도착한 사람이 도맡은 저녁요리, 평온함. 모두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졌다. 우리집이 생기고부터 나는 밖에 있을 때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졌다. 그 집은 나의 아이에게도 주고 싶은 것이었다.
때 타지 않은 곳이 때 타지 않게 하는 일, 제철에 맛있는 과일을 채워둔 냉장고, 하나씩 모은 추억 담긴 물건들, 표지가 너덜거릴 정도로 같이 자주 보던 동화책, 오래 두고 써왔지만 늘 청결한 향이 나는 침구, 마음의 안식. 나의 아이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집.
내가 ‘진짜 우리집’에서 살 수 있게 된 건, 내가 살고 싶었던 집에서 내 아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나에게 치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