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의 주말과 방학 때 시골 할머니네 갔다. 이제는 시골에 찾아갈 사람이 없다. 아니, 찾으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관계는 내가 사는 곳과 그곳의 거리정도만큼 멀어서.
할머니네 도착하면 늘 늦은 밤중이었는데, 특히나 여름은 무섭게 느껴졌다. 할머니 집은 옥수수밭을 지나야 했다. 무성하게 자란 옥수수잎들이 앞을 가려 길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어깨에 스치는 옥수수잎은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우는 것 같았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듯했지만 형광등 아래 차려진 따뜻한 밥냄새를 맡으면 안도감이 들었다.
할머니 집 지붕을 가리는 밤나무 앞 구멍가게에는 과자 종류도 얼마 없었지만 초코파이 상자를 활짝 열어놓고 낱개로 200원씩 팔았던 게 좋았다. 문방구에서 산 지갑은 닫아도 열어도, 늘 가벼웠기 때문에. 할머니네 가서 좋은 건 그 정도였다. 지루할 정도의 고요함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앞마당 폭신한 흙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닭장 속 닭들이 얕게 깔린 모래를 거니는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멈춘 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어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챙겨야 할 건 내 책가방 정도였고 걱정거리는 밀린 일기 정도였던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