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Feb 11. 2023

애프터썬 단상

연희동. 라이카씨네마. 애프터썬

끝까지 다 봤을 때 지나간 모든 장면들이 아련한 후회와 그리움의 실로 꿰매지는 영화이다. 그 이전에는 딱히 아무런 진전 없이 질질 끌리는 듯한 이야기와 그런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파편화한 장면의 연속이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부녀지간인 캘럼과 소피의 터키 여행은 둘 사이의 애정과 서운함의 반복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캘럼이 소피에게. 어느 날은 소피가 캘럼에게. 마치 이번이 마지막 여행인 것처럼 어떻게든 행복한 추억으로 꽉찬 여행을 보내고자 하는 두 사람은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화질이 좋지 않은 캠코더 영상처럼 행복만큼 아쉬움도 쌓여간다. 마치 그저 그런 기억으로 남을 그저 그런 과거가 될 것 같다.

사진은 빛이 바랄수록, 영상은 화질이 나쁠수록 그 시절을 향한 아련한 후회와 그리움을 자극한다. 빛이 바라고 화질이 나쁘기에 더 자세히 보려고 한다. 자세히 볼수록 그 시절의 기억이 파편이지만 하나의 추억이 되어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후회와 그리움을 아련하게 남긴다. 명멸하는 불빛 속 춤추는 캘럼의 모습이 보이고 안 보이고를 반복하듯이. 한참 재생되던 캠코더의 낡은 영상이 갑자기 꺼지거나 멈추듯. 그 시절의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분리되고 가려져 있지만 소피에게 터키 여행은 뒤늦게라도 기억을 넘어 추억으로 남는다. 단지 그 추억에 캘럼이 담겨 있다는 것만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유령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