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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r 20. 2022

무너진 뒤에도 쌓이는 사랑

건대. 롯데씨네마. 사랑 후의 두 여자.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랜 세월 거쳐 지나간 풍화와 침식이 남긴 흔적이 켜켜이 쌓이는 절벽과 같다.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쌓인 흙은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깎이는 가운데 절벽이 된다. 바람과 물은 흙을 깎고 빚으며 가지각색의 절벽을 만들어 절경을 선보인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세게 깎아 애써 쌓아 단단해진 흙을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한다. 차곡차곡 쌓인 세월의 인내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은 심장을 철렁 내려앉힐 청천벽력이리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만남을 지속하며 서로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눠야 사랑은 형태를 갖추게 된다. 만남과 감정의 교류는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교차하며 가지각색의 사랑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만남과 감정의 교류가 항상 좋지만은 않기에 애써 깎고 빚어 만든 사랑은 언제 형태를 유지했냐는 듯 무너진 모래성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랑이 형태를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 무너진 사랑은 가슴을 찢는 단장지사(斷腸之事)라 할 만하다.


하지만 청천벽력이든 단장지사든 단순히 무너지기 때문에 사랑과 절벽이 닮은 것은 아니다. 무너진 흙과 모래는 무너지되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쌓여서 흔적이 남아있다. 밑에 쌓인 채 남아있는 흙은 과거의 절벽을 기억하게 한다. 바람과 물에 무너지되 단단히 쌓인 흙은 단단히 서서 바람과 물을 맞는 절벽으로까지 자연스레 눈길을 가게 한다. 마찬가지로 만남과 감정의 교류 중 무너지되 남아있는 사랑의 흔적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된다. 무너진다 해도 남아있으며 나아가 더 단단히 뭉쳐 새로운 무언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절벽과 사랑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절벽과 사랑이 다른 점이라면 절벽의 흔적은 자연의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면 사랑의 흔적은 보통 상처이며 상처는 나쁜 일로 생긴다는 것일게다. 연인 간 성격, 관점 등의 차이나 연인의 부정한 행위 등 관계를 맺으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차이는 상처가 되어 사랑 이후의 인연에 영향을 준다. 좋든 나쁘든 간에 하나하나 쌓여 단단해진다. <사랑 후의 두 여자>에 등장하는 메리와 쥬느처럼 말이다.

출처. 다음 영화

사랑을 위해 무슬림으로 종교까지 바꿔 결혼한 영국인 메리. 사랑을 위해 결혼을 포기한 채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프랑스인 쥬느. 절벽과 사랑 사이 유사성을 기반으로 <사랑 후의 두 여자>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절대 만날 것 같지 않은 메리와 쥬느 두 여인이 만나 함께 단단해지는 것을 그린다. 재밌는 것은 두 여인이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영화는 극 초반에 두 여인 사이에서 부정을 저지른 남편 아메드의 얼굴을 영화 전체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편 아메드는 메리와 쥬느의 삶에서 의복, 엑세서리, 아들, 음식 등 다양한 파편으로만 등장한다. 파편화된 아메드는 그가 실제로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없게 하면서 단지 그가 무슬림이라는 것, 메리와 쥬느 두 여성 모두와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었다는 것 정도의 사실만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사랑 후의 두 여자>는 남녀 간 이성애를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여기는 기존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전복하면서 남성이라는 성별을 제외하고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채 남아있는 이들에게 집중한다.

출처. 다음 영화

사랑을 위해 자기 인생의 모든 인프라와 공동체를 버리고 외톨이인 곳으로 갔음에도 종국에는 배우자의 불륜이라는 기만과 배신을 맞이한 메리와 사랑을 위해 연인과 평생을 함께 사는 결혼을 포기한 채 홀로 어렵게 아들을 키우며 연락만 애타게 기다린 쥬느. 둘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른 나이에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힘겨운 삶을 홀로 이겨내면서 상대방을 기다린 외로움 즉, 아메드와 맺은 사랑에서 메리와 쥬느가 각각 받은 상처는 두 사람이 모두 피해자라는 사실만 알려준다. 하지만 <사랑 후의 두 여자>는 두 여인이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는 과정에 집중하면서도 이들이 서로가 받은 상처를 보듬는 가운데 피해자로서만 연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상대가 받은 상처를 보듬는 가운데 피해자임을 넘어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서로 연대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아메드와 쥬느 사이 아들이자 성소수자인 솔로몬을 통해 달성된다는 점은 <사랑 후의 두 여자>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에서 바라는 지향점을 보여준다.

출처. 다음 영화

10대 사춘기 소년으로 함께 살지 못하는 가족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성소수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굳이 그것을 자신의 어머니인 쥬느에게 말하지 않는 솔로몬은 메리와 쥬느 모두에게 아메드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그 너머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솔로몬은 육체적 어머니인 쥬느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으나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성소수자성을 알게 된 메리에게 아버지인 아메드의 모습을 알게 된다. 메리와 연애하던 시절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와 그 나라의 문화,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감정 등. 메리 입장에서 솔로몬은 아메드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일찍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아메드를 향한 자신의 그리움, 아메드와의 사랑을 위해 선택하고 나아간 자신의 과거 모습을 모두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즉, 이 두 사람의 정신적 유대는 육체적으로 이미 유대하고 있는 쥬느-솔로몬의 관계와 결합해 메리-아메드-쥬느라는 연대를 형성하게 한다.


쥬느에게 메리는 어떻게 보면 공포스러운 인물이다. 남편에게는 파키스탄인이라는 설명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으며 심지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찾아와 오해이긴 하지만 이사까지 도와준 여인이다. 심지어 자기 대신 아들을 돌봐주며 식사까지 준비하고 대신 뺨을 때리며 훈육까지 했다. 삶에 지쳐 어머니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을 대신해 어머니로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새 집으로 이사한 날 "나는 아메드의 아내예요."라고 정체를 밝혔으니 쥬느 입장에서 메리는 아메드와 사랑을 맺으며 쌓여온 아메드가 사랑한 여자이자 어머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든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공포가 지나간 뒤에는 자신과 똑같이 아메드와 맺은 관계로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모든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자식을 사랑해준 여인이라는 사실이 쥬느에게 남는다. 아메드만이 아니라 솔로몬을 함께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점은 이미 육체적으로 솔로몬과 연결되어 있는 쥬느가 자신의 공포를 이겨내고 칼레에서 도버로 메리를 만나러 가는 원동력이 된다.

출처. 다음 영화

아메드와 메리가 함께 쓰던 침대에서 쥬느와 메리는 나란히 누워 잠시 아메드가 남긴 상처와 질문 즉, 아메드가 메리를 떠날 생각이었는지, 왜 메리를 파키스탄인이라고 소개했는지 등을 함께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상처와 질문이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들에게 크게 의미가 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공유한다. 솔로몬이라는 원동력을 기반으로 메리와 쥬느는 피해자로서 서로 반목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과 함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메리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달을 바라보며 메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메드의 목소리처럼 그들에게 파편화된 아메드는 말 그대로 과거의 파편이 되어 때때로 좋은 추억으로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아메드가 어떤 상처와 질문을 남기든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솔로몬이 있으며 그저 때때로 과거를 추억할 뿐 계속 나아가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출처. 다음 영화

항해사인 아메드를 기다리다 아메드의 배가 보이면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갔던 절벽으로 쥬느와 솔로몬과 함께 나가 바다를 바라본 메리에게 무너진 절벽의 잔해는 더이상 무너지는 때에 느낀 경이롭지만 공포스러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메리에게는 아메드를 함께 기억하면서 함께 살아갈 쥬느와 솔로몬이 함께 있기에 절벽의 잔해는 단순한 잔해가 아니라 새롭게 쌓아나갈 사랑의 시작이다. 그들 사이의 사랑에는 이성애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인 솔로몬이 있으니 말이다. 풍화와 침식으로 떨어졌음에도 그 밑에서 단단하게 쌓여있는 절벽의 잔해처럼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사랑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힘겨울지도 모를 현재를 꾸준히 그리고 묵묵하게 함께 사랑하며 나아갈 것이다. 무너짐은 곧 쌓임이니 사랑은 무너진 뒤에도 계속 단단히 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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