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쓴다
오후 2시, 사이렌 소리.
“국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오늘은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어제 지인 집에 갔을 때, 창밖으로 그 익숙한 방송이 들려왔다.
지인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민방위 훈련이야. 진짜 오랜만에 듣네.”
나는 무심히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선 오래된 기억이 툭 하고 열렸다.
어릴 적 우리는 책상 밑에 숨거나, 복도로 나가 실내화를 꼭 쥔 채 훈련이 끝나길 기다렸다.
라디오가 치지직 끊기면 가슴이 철렁, 비행기 소리가 크게 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시절,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구호는 무겁게 각인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공산당 대신 ‘콩사탕이 싫어요’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시간이 흘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서독과 동독이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통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올림픽 공동 입장, 분단의 상징이던 휴전선이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는 통일국가, 모병제,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세상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덮쳤다.
전쟁보다 무서운 건 바로 코로나였다.
‘피난’이 아니라 ‘집콕’이 생존의 방식이 되던 날들.
이제, 다시 들려온 민방위 방송은 나를 움츠리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절의 나”를 꺼내어 보여준다.
어린 시절 대피하던 나는 이제, 그 또래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반백살이 되어 가니 자꾸 깜빡거린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쓴다.
기억하기 위해서.
그 시절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민방위 사이렌 속에서 다시 깨어난 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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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 쓴다 - 시리즈]
• 민방위훈련이 불러온 기억
• 삐라를 아십니까
• 할머니의 여름휴가, 뮤지컬
• MZ가 되고픈 70년대생
• 수돗물로 보는 바뀐 세상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