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쓴다
⌈ 어린날의 삐라, 세상의 무게를 처음 본 순간 ⌋
“삐라? 저 처음 들어봐요.”
아이 엄마들의 커피타임, 나이와 세대 차이 속에서 튀어나온 한마디.
나는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 아, 내가 70년대생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첫째를 39살에 낳았다.
요즘엔 그 나이에 아기를 낳는 사람도 꽤 늘었지만, 십 년 전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 또래의 엄마들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처럼 우리도 뭐 편하게 지내기는 한다, 내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세대봉착을 하게 되고 나면, 아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삐라를 봤냐고?
봤다뿐인가, 서너 번은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기도 했다.
누군가 직접 뿌리고 간게 아닐까, 뭐라고 써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혹시 간첩이라도 근처에 있을까 봐 벌벌 떨며 말이다.
다행히 경찰서는 도보 10분 거리. 삐라를 가져가면 헌병 아저씨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옥춘이나 모나카 같은 과자를 건네주곤 했다.
요즘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했을 거다. 뭐가 들었을지 알 수 없다고.
그리고 여자아이 머리를 아저씨가 쓰다듬는 건 더더욱.
이런 추억을 떠올릴 때면, 솔직히 알지 못했던 그때가 나은 건지, 요즘이 더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때의 삐라에는 북한 찬양 문구가 있었다.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글, 북쪽은 잘살고 있다는 주장.
나는 그 종이를 들고 경찰서에 가며 떨었고, 또 안도했다.
지금은 다르다.
대통령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이 바뀌었지만, 저 건너편은 삼대째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공포로 벌벌 떨던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민방위 훈련조차 무뎌진 세상이 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언니는 “한국에서 어떻게 사냐, 전쟁 나면 어떡하냐”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말한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안전하고 편한 나라라고.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독일이 사실은 분단국가였다가 통일된 거라고 하면, 그거 거짓말 아니냐고 할만큼 역사속으로 흐려지고 있다.
이 아이러니.
삐라가 잊히고 분단도 무뎌지는 이 아이러니.
그래서 나는 쓴다.
우리의 오늘은 평안하지만,
그 평안은 누군가의 감당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하기위해쓴다 #삐라의추억
#시대의무게 #70년대생이야기 #세대공감 #울컥시리즈
[기억하기 위해 쓴다 - 시리즈]
• 민방위훈련의 기억
• 삐라를 아시나요
• 할머니의 여름휴가, 뮤지컬
• MZ가 되고픈 70년대생
• 수돗물로 보는 바뀐 세상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