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한 장면에 또, 울컥했다
엄마는 올해 초, 평평한 철판 위에서 미끄러졌다.
눈길도 아니고, 그냥 물이 살짝 묻어 있었을 뿐인데 발목뼈가 부러졌다.
“나이 드신 분들 골절만큼 무서운 게 없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언니가 늘 하던 말이었는데, 그 말이 우리 집에도 닥쳐왔다.
수술 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법 가까운 거리쯤은 걸어 다니신다.
하지만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아니었어도, 엄마는 바깥을 잘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거나, 야외 카페에서 잠깐 바람을 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안녕달 작가의 뮤지컬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보게 되었다.
순간 떠올랐다.
아이들 방학 막바지에, 엄마를 모시고 함께하기에 딱 맞았다.
작년 겨울, 첫째 아이와 함께 본 <할머니의 겨울이불> 에서도 나는 울었다.
따뜻한 이불 속 세상, 뜨끈한 달걀, 얼음 식혜.
어릴 적 겨울, 차가운 옷을 입기 싫어 짜증 내던 내게
엄마가 이불 안에서 데워 건네주던 옷.
집집마다 있던 빨간 꽃무늬 담요.
그 담요 속에서 건져내던 식혜와 나의 어린 시절.
그때도 눈물이 났었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떤 느낌일까.
아이들은 무대 속 소라의 세상에 감탄했고, 신기한 씨씨상점에 열광했으며,
장엄하게 등장한 고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달랐다.
할머니 윤희가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불러주던 그 노래를 다시 찾는 장면에서 결국 울어버렸다.
어두워진 조명을 핑계 삼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아빠라는 나의 치트키가 또 들켜버렸다.
이제는 바닷가로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여든의 엄마.
커튼 콜이 끝나고, 엄마는 한동안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의 여름휴가는,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이 둘, 나, 그리고 우리 엄마.
함께 본 그 뮤지컬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묶어주는 끈이었다.
#할머니의여름휴가 #안녕달작가 #가뮤지컬 #기억하기위해쓴다
#아이와함께 #가족과함께 #엄마와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