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안 할 거야."
단호한 나의 말에 친구들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지겹잖아. 또 누군가를 알고 만나서 차를 마시고 대화하는 거. 안녕하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고 아하! 당신은 그런 분이군요. 제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건데 당신은 어떠세요? 네, 잘 기억해 놓을게요. 잘 부탁해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서로의 개인정보를 오픈하고 스킨십의 합을 맞추고 내 치부까지 드러내야 하는데도 서로 맞을 거란 확신이 없는 이 지난한 과정이 너무 물리고 질려."
서른다섯 하고도 11월의 나는 그런 말을 했다. 연애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었다. 원 단위 미만 절사처럼 카운트 하기 창피한 반년 이내의 유사 연애 몇 번과 3년을 함께 했지만 지나고 보니 함량 미달의 것으로 가득했던, 나름 일생의 사랑이었던 마지막 연애도 벌써 10년 전이었다.
그 공백의 10년 동안에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누군갈 좋아해야만 생기가 도는 사람이라 가끔은 마음에 어떤 이를 담곤 했다. 그 과정을 바라봐 온 친구들 입장에선 그냥 하는 소리다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냥 손이나 잡고 싶다. 10살! 은 엄마 아들과 동갑이라 양심이 아프니까 손 잡고 다닐 8살 연하남이나 생겼으면."
"넌 왜 그렇게 연하를 좋아하냐, 정말."
"그러게, 하지만 나도 30대 중반인데 이젠 연하들도 30대잖아."
그래,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연애 말고 결혼도 말고. 결혼적령기가 저물어 가는 나이에도 아무 조건 없이 마음만으로 누군가를 위해 간절해지는 그 아릿한 마음을 품고 싶었다.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소녀처럼.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머리로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서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원 같지도 않은 소원은 딱 1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이르미안의 네 딸들 - 신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