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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진 Jul 26. 2019

희망의 이유

나를 이해해주는 벗들 그리고 책과 함께하는 삶


 '서얼의 문과 응시를 금하며, 잡과나 무과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더라도 한품서용제를 적용하여 출세를 제한한다.'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의 한 부분이다. 유교적 이념을 근본가치로 삼은 조선은 본처의 자식이 아닌 서자와 얼자를 부정한 자로 여기며 법적인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러한 차별은 태종 시절 서얼금고법(1415)에서 시작되어 성종 시절 완성된 경국대전에도 기록되었다. 경국대전에는 금고의 대상이 서얼과 그 자손에서 서얼자자손손으로 확대되어 본인과 본인의 자식만 고생하면 이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런 절망적인 마음은 박제가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저는 제 후손들에게 이처럼 서러운 핏줄을 이어 가게 할 최초의 조상이 될 테지요. 제가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원망과 눈물과 한숨이 제 몸위에, 제 이름 위에 덕지덕지 쌓여 짓누를 것입니다.     p.71


 삼강오륜을 기초로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서얼들은 배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외로웠을 것이다. 입신양명을 하여 집안의 자랑이 될 수도 없지만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판다는 것은 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철종 시기에 발표된 신해허통(1851)으로 제한적이나마 법적으로 서얼들의 출세의 길을 열어주기까지 수 많은 서얼들은 괴로움 속에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과 자기고민은 이덕무와 벗들이 윤회매를 보고 나눈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니라, 살면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P.58

 하지만 이덕무와 벗들은 왕의 부름을 받아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고 청장관전서, 발해고, 무예도보통지 등등 여러 업적을 남긴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했을까?



 이덕무에게는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서얼 출신인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은 물론 적자인 이서구도 있었다. 그들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슬픔에 대해 공감해주기도 하였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여 고민하는 벗을 보며 안타까워 하다가도 벗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위로 뿐인 현실에 더 슬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지금보다는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 믿고 기대며 견뎌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이끌어 주는 스승이 있었다.  바로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이다. 이덕무와 벗들은 선생들의 가르침을 통해 위안과 자기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자면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선입견은 버려야 할 게야. 특히 우리는 작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너무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버릇이 있어. 큰 나라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하지만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야."  p. 144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신분의 제약으로 시도 조차 해볼 수 없는 일은 이제 없다. 누구라도 방향을 잘 잡고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함께할 벗들과 스승은 여전히 중요하다. 저번 주 씽큐베이션 모임에서 개개인성 확립에 대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게 과연 개개인성 확립을 위한 길일까? 라는 물음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피드백을 통해 옳은 길과 잘못된 길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었는데 이덕무와 벗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덕무와 이서구가 책을 돌려보며 나눈 대화 중에 책을 빨리 돌려 달라는 이서구를 점잖게 타이르는 편지처럼 이덕무와 벗들 사이에 뼈를 때리는 한마디가 항상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길이라면 정확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벗이 훌륭한 벗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과연 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던진 물음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던지는 물음의 질을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뻔한 대답이겠지만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경험을 쌓아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책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함께하는 동료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이덕무와 벗들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 것처럼 우리도 책을 읽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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