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Aug 22. 2024

육아에 정답은 없다

매 순간 내 아이에게 맞는 해답만 있을 뿐

오늘은 아이의 개학 날이다. 긴 듯 짧은 듯 한 달간의 뜨거운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나의 특근도 끝이 났다. 아이와 방학을 보내며 어떤 것을 이루거나 성취하려고 하기보다는 열심히 쉬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놀기로 했는데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아이는 끊임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배웠고 생각지도 못한 취미를 가지게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그렇게 또 한 뼘 자라났다. 아이가 만난 새로운 취미는 건프라 조립이다. 조립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던 아이의 말에 나와 남편은 감탄을 했다. 단순히 조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등장인물들까지도 줄줄이 꿰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놀라웠고 기특했다. 그렇게 아홉 살에 마음이 편해지는 취미를 만나다니. 멋진 녀석. 아이는 엄마가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스스로 배운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방학 특근을 하는 동안 나 또한 열심히 배운 게 있다. 방학 동안에만 배운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만 7년간 주양육자로서 육아를 해오며 느꼈던 것들이 결론에 이르렀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이를 스물여덟에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던 때였는데 엄마가 되었다니 아직도 어리게만 느껴진다. 그 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수능 문제 풀듯이 육아에 정답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 없이 깨지고 아파하고 실패하고 좌절해 왔던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안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되어서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육아에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매 순간 내 아이에 맞는 해답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방학 첫날,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간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점심을 준비했다. 열심히 차렸고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배가 안고프다고 했고 먹기 싫다고 했다. 내 생각에 아침을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하게 먹은 아이는 지금쯤 밥을 먹어야 했다. 내가 생각해 낸 정답이었을 뿐. 아이의 몸은 배고픔의 신호는 아직이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야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규칙적인 식사가 아이 건강의 척도라는 문구를 어디서 봐서였을까. 정시에 밥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식사를 강요했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행동했는데 아이에게는 맞지 않은 오답이었던 것이다. 식사뿐만이었을까.


또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와 식사를 하고 바로바로 치워야 하는, 깔끔하다 자부하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하루에 설거지를 네다섯 번은 했다.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가놓으면 집안의 슬픈 일이 가시지 않는다는 옛말에 사로잡혔다. 그걸 하면서 아이가 나를 원할 때 기다림을 강요했고 (설거지가 끝난 후에는 지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가지 않았다.) 아이보다 설거지가 우선인 엄마처럼 굴었다. 설거지뿐만이 아니다. 청소, 빨래, 텃밭 등. 모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아이에게 늘 기다려달라고 했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아이를 뒷전에 두었던 나를 반성한다.


나는 왜 아이를 허드렛일보다 뒷전에 두었을까. 사회 탓을 하자면 성취지향적이고 성과주의 사회에서 육아는 아마도 가장 꼴찌인 업무일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즉각적인 보상이나 성취하고는 멀기 때문이다. 내 성향 탓을 하자면 인정욕구가 큰 나로서는 육아는 인정받는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임이 확실하다. 그냥 엄마로 존재하는 것이 육아인 것인데 육아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했으니. 자꾸 육아로 성취감을 보려는 순간 아이와의 관계가 산으로 간다는 것을 밥상을 차리며 직감했다.


반성한다. 그간의 유연하지 못한 나의 모습들을. 방학 동안에는 하루에 한 번만 설거지를 했다. 아침부터 쌓아두고 저녁 먹고 설거지하기. 나머지 시간은 아이가 부를 때 자주 응해주기. (그러나 모든 순간을 다 응해주진 않는다.)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니 나도 여유로워지고 아이도 행복해진 시간이었다. 이제 아이가 끝날 시간이다. 아이의 부름에 응하러 가는 나는야 멋진 엄마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매 순간 내 아이에게 맞는 해답만 있을 뿐.


정답을 찾으려 애쓰는, 또는 애썼던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오늘도 당신은 멋진 엄마입니다. 육아팅~!



이미지 출처: Freepik

이전 09화 아이의 취미를 함께 하는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