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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11. 2024

시아버지님이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목소리를 내었더니 생긴 일

일요일 저녁 갑자기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ㅇㅇㅇ님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


시아버지였다. 헐. 이게 뭐야. 시아버지 하고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상처를 받았던 적이 많기에 SNS에까지 오시는 것이 불편했다. 나는 남편과도 팔로우가 아니다. 남편은 SNS를 하지 않을뿐더러 나의 사적인 공간에까지 자기가 가는 건 실례라는 이유에서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 SNS는 사적인 공간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에이, 이건 아니지. 아빠 선 넘었네. 내가 이야기할까? ”

“아니,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 ”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할 말은 하면서도 관계에 대한 흔들림이 전보다 훨씬 덜하다. 아마 좋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나 스스로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남편은 시댁에 내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나를 응원하는 눈치였다. 목소리를 내면 매번 끝이 좋지 않아 한동안 남편뒤에 숨어서 지냈던 나였기에 달라진 내 모습을 응원해 주는 듯했다. 바로 나는 아버지께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저와 친구들의 유희공간에 오신 걸 환영하지만 상주하시는 건 정중히 거절합니당..팔로우에 남편도 없습니당..팔로우 거절하고 비공개 하겠습니당:) 편안한 주말 되세요-하트“


나름 공손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나쁘지 않다고 웃으면서 “히히 내일 아빠 놀려야지. 여보한테 ban(금지) 당했다고”라고 말했다. 우리는 시댁이야기에 더 이상 열을 올리지 않았고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가벼워졌다.


답장이 왔다.

“이 뭔 말씀? 내 직원들이 내 인스타 보자고 조물 거리다가 뭔가 잘못 됐을까요? 전혀 귀하의 SNS에 관심 없답니다. 뭔가 잘못 됐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


그저 나의 정중체에 맞춰서 팔로우한 것에 대해 오해였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보였다. 진지하게 파고들면 민망하고 머쓱하실 것 같아서 적당히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ㅋㅋㅋㅋㅋㅋㅋ앗>.<ㅋㅋㅋㅋ

아니예여 아버지~ㅋㅋ

좋은 밤 되세여 ㅋㅋㅋㅋㅋ“


그러자 또 메시지가 왔다. 직원들이 인스타란 걸 해보라해서 게시물 몇 개 올리고 귀찮아서 안 들어간 지 1년도 넘었고 상주가 뭔지 유희공간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귀하의 그 공간은 당연히 본 적도 없다며 방금 SNS 앱을 삭제했다고까지 하셨다. 마지막에 행복한 나날 되시라며 기원까지 해주셨다.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갑자기 온 정중체 메시지에 놀라신 것 같아 보였다. 팔로우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거절이니 비공개니 하니 황당하셨을 것도 같다. 첫 번째 답장은 내가 보낸 정중체 모드에 맞춰서 하시는 거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 답장은 상주가 뭔지, 유희가 뭔지라고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언짢아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메시지를 읽을수록 이게 이렇게 까지 죽자고 달려들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가볍게 불편함과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던 나의 의도와는 달리 나도 기분 나쁨이 전염되고 있었다.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도 어리둥절해했다. 사실 노쇼사건에서도 그랬지만(갑자기 밤 10시에 연락이 왔다. 친구들과 골프치러 오셨다며 다음날 10시까지 나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다음날 12시 비행기로 올라가신다기에 10시에 만나 30분 얼굴 보고 공항으로 가시는 걸로 약속을 했는데 9시 반에 카톡으로 일행이 11시 비행기로 바꿔서 못 보고 간다고 하셨다. 10시에 전화하니 아직 표선 숙소에서 출발 전이라고 하셨고 표선에서 제주공항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데 11시 비행기를 어떻게 타신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늘 아버지의 이유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요즘 누가 상사의 핸드폰으로 SNS에 들어간단 말인가.  팔로우까지...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시니 믿자. 믿었다. 나는 초저녁 잠이 많기도 하고 생각이 깊어지면 또 상처가 깊어질까 “네~~!! 다음에 봬요 ㅎㅎ”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얼른 자버렸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그 일은 이미 지난 일이 되었고 옅어졌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밤에 곰곰이 생각했는지 오늘 아버지께 전화하겠다며 당신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나는 혹시 내가 무례하게 굴었나 걱정은 했지만 안심하라는 말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팔로우를 직원들이 누른 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본인 계정이니 본인이 누른 걸로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그냥 머쓱하게 미안하다거나 본인이 누른 게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라고 끝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아버지는 또 한 번 나의 거절에 쿨하지 못한 모습으로 자신의 소인배스러움을 증명해 냈다. 그동안 내가 왜 시댁에 적응을 못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점심시간 즈음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버지는 몰카범 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삐졌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남편은 그래서 지금은 괜찮냐 물었고 왜 함부로 삐지냐고 했다고 한다. 서운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거는 잘못된 거 아니냐. 얼굴 안 보고 살 거냐. 8월에 온다며. 며느리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러냐. 당장 사과하라고 했단다. 우리가 우습냐고 까지 했다고 한다. 내 예상이 맞았다. 시아버지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와 수용을 하지는 않고 받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참 이기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내 목소리 내었더니 더 이상 부부싸움도 하지 않게 되었고 기분은 별로였지만 감정의 해소를 경험했다. 사실 통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남편은 아버지의 민낯을 보고는 아빠 안 보고 연락 안 해도 나 개인으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있어서 그럴 수는 없지 않냐며 나에게 열받음을 호소했다. 40년 전 이 사람도 친정에 가야 하지 않느냐며 할머니에게 반기를 들던 아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남편의 방어막은 생각보다 튼튼했고 든든했다.


일이 년 전에 남편과 크게 다투고 메신저 프로필을 내린 적이 있다. 그때 시아버지께서는 전화 오셔서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남편의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소홀해져 생긴 육아문제로 티격태격한 이야기를 했다. 나름 내 입장에서 화가 난 걸 이야기했고 ‘내 이 자식 내가 혼내야겠어.’라는 말을 기대했던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빠랑 엄마는 40년 됐는데.(19살 때부터 연애하셔서 결혼하신 케이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해본 적이 없어. 남자들은 원래 미안하다고 안 해.”


난 속으로 그랬다.

‘자랑이세요...’


남편이 사과하시라고 했다는데 메시지는커녕 나의 마지막 메시지에 1조차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받아야겠다. 남자들이 원래 안 한다는 그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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