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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12. 2024

하하하 봄이 와요

하봄이에게 봄날이 가득하길

하봄이는 우리 집 강아지다. 아이가 일곱 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서 학교에 들어가면 생각해 보자며 미뤘었다. 그러다 진짜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다. 외동이라 언젠가는 반려동물을 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었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데다가 뒤치다꺼리는 아이 하나로도 벅차 둘째는 엄두도 못 냈던 내가 강아지가 웬 말인가. 이런 내가 강아지를 끝까지 돌볼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고 자신이 없었다. 무심코 데려왔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책임지지 못하게 된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인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4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면 나와 아이뿐이라 아이는 늘 심심해했다. 그리고 남자아이인데 감성적인 편이라 무언가를 돌보는 걸 좋아한다. 학교에 들어가도 1학기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어 도와줘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신경도 많이 쓰이고 손이 많이 간다. 아이가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곤 할 때마다 엄마가 너를 돌봐야 하는 데 강아지까지 돌보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며 마당 있는 집으로 가게 되면 데려오자고 했다.(이때까지만 해도 마당 있는 집에 가면 밖에서 키울 생각이었다.) 아이는 내가 강아지를 볼모삼을 때마다 집안일을 더 잘 도와주곤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꾸 강아지를 볼모 삼았었다. 갑작스레 제주행이 확정된 8월, 아이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제주도에 갈 수 없다며 울었다. 안타깝게도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집과 학교, 이삿짐센터 등을 알아보고 하나둘씩 일정을 잡았다. 언젠가 작은 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제주도까지 가는데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아뿔싸. 마당 있는 집에 가면 강아지 키운다고 했는데. 얼마 후 아이는 제주도 가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제주도에 가면 주택에서 지낼 거고 그러면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우리는 기대의 찬 아이의 눈빛을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제주도에 가기 전 강아지를 데려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사 가기 싫다는 아이를 데려가는 미안함때문이기보다는 마당 있는 집에 가면 강아지 키우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강아지를 데려오기에 앞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남편은 마당 있는 집에 가는 이상, 강아지는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라며 집안에는 들일 수 없다고 했고 아이는 소중한 우리 가족인데 어떻게 밖에 두냐고 했다. 남편은 며칠을 공부하고 고민하더니 "강아지 키우려면 밖에서는 어렵고 집안에서 키워야 된대. 그래야 훈련도 되고 사람하고 사는 법을 개도 배워간다네. "라며 개통령의 말을 빌어 아들에게 항복했다.


남편은 20대 초반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휴학까지 하고 할아버지가 지으시던 농사를 이어 지었다. 시골에서는 개가 출산을 하면 이집저집 분양한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동네에서 아기 강아지를 얻어와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그 친구 이름은 다순이다. 올해로 열한 살이다. 처음 인사 드리러 갔을 때 다순이를 봤는데 너무 예쁜 시고르자브종이었다. 남편은 다순이를 애지중지했지만 다순이는 지금도 마당에서 생활한다. 남편은 다순이도 집안에 들인 적이 없는데 아들 덕분에 개랑 같이 살게 생겼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강아지 입양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 펫샵보다는 일하다 알게 된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 입양하길 원했다. 카라는 유기견, 유기묘들을 잘 관리하면서 입양을 진행하고 있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상수동에 있는 아름품센터에 방문해서 강아지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강아지를 접해 본 것은 동네 애견카페에 놀려간 게 전부였기 때문에 하루종일 강아지랑 지낸다는 게 어떤 건지 강아지에 진심인 선생님들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희망을 안고 센터에 방문했다. 처음에 갔을 때 다소 많은 강아지들 모습에 놀라 경직되었던 아이는 친절한 선생님들 덕분에 금방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는 먹이는 하루에 얼마나 줘야 하는지,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쉬와 응가는 언제 하는지 제법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한 생명을 돌본다는 게 어떤 건지 느끼는 듯 보였다.


“친구, 강아지 입양해 가면 매일매일 산책시켜 줄 수 있어요?”

“네! 아침에는 학교 가야 해서 안되고 학교 다녀와서는 할 수 있어요.” 라며 꽤나 현실적인 대답을 하는 아이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이가 강아지 입양을 포기할 거라는 내 희망의 불씨를 꺼뜨렸다. 아이는 그날 당장 강아지를 집에 데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선생님께서 당일 입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고 서류를 통해서 입양절차가 있다고 안내해 주셨다. 강아지를 들이기 전 짐정리부터 해야 했다. 짐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8월 끝자락에 와있었고 9월 9일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카라 더봄센터에서 입양파티를 연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번식장에서 300마리를 전부 구조해 건강검진과 접종, 중성화수술을 마친 구조견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입양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시기적으로도 좋았고 우리는 마음만은 준비가 된 상태였기에 파티에 참여신청서를 냈다.


드디어 9월 9일. 입양파티에 가기 전에는 아기강아지를 데려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나의 집안일을 생각해 털이 덜 빠지는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연은 역시 운명인가 싶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에 갔을 때 너무 많은 강아지들이 모두 한 번식장에서 구조됐다기에 놀랐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격들도 다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양해서 신기했다. 짖는 친구, 시도 때도 없이 마킹하는 친구, 사람손길이 낯설어 자꾸만 구석으로 도망치는 친구, 계속 점프하는 친구, 임신한 친구... 정말 다양했고 입양파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아이가 한 강아지와 껴안고 있었다. 이미 둘은 마음이 정해진 듯 보였다. 나이는 네 살이었고 하얀 털이 길게 나있는 친구였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아이에게 아기강아지를 보자고 했다. 아이는 이미 마음이 하얀 강아지에게 가있었기에 아기강아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는 아까 껴안고 있던 하얀 강아지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했다. 지켜보시던 선생님들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며 가족사진도 미리 찍어주셨다. 어미견으로 번식장에서 지내고 있었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마음 한편이 찡하기도 했고 사람과 생활한 적이 없을 텐데도 눈 맞춤을 잘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는 하얀 강아지를 한참 동안이나 품에 안고 있었다. 하얀 강아지도 주인이려니 하며 아이 품에 아주 편하게 앉아있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하얀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바라주었다. 하얀 강아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오니 입고 간 검은 티셔츠는 온통 하얀 털이었다. 그 사이 정이 들었는지 눈에 밟혀 홈페이지에 들어가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다. 2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역시 예뻐서 인기가 많았나 보다’라며 실망하고 있는데 카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얀 강아지가 우리 가족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기뻐할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예상대로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9월 22일. 아직도 그날이 기억난다. 예쁘게 목욕하고 미용까지 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왔다. 일주일 동안 산책 금지를 포함한 여러 가지 조항이 쓰인 서류에 사인을 하고 접종 수첩을 받았다. 주인이라는 걸 인식하기 전에 산책했다가 잃어버리는 사고가 제일 많이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센터에서 이름은 다른 이름이었지만 아이가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했다. 하봄이. 하하하 봄이 와요라는 뜻이었다. 하봄이가 오기 전부터 몇 가지 이름을 정해놓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어울리는 이름으로 아이가 정했다. 처음 온날 꼼짝도 하지 않고 소파 팔걸이에 앉아서 밤을 새운 하봄이는 이제 배를 보이고 자기도 하고 산책을 할 줄 몰라 자꾸만 주저앉아 어리둥절해하던 하봄이는 이제 산책하기 전에는 아침도 안 먹는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뿌듯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집에 적응을 잘하고 잘 따라줘서 고맙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하봄이 때문에 매일 산책을 한다. 하봄이는 오름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잘 걷는다. 예쁜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그 덕분에 나의 우울증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까지 함께 왔고 하봄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하봄이는 잘 지내고 있다. 봄 같은 나날들을 지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일 산책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고 간식도 먹고 "앉아, 기다려. 이리 와"등 훈련도 배워가며 지내고 있다. 애견을 동반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우리와 함께 간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는 멀미를 해서 침을 흘린 모습으로 봤는데 이젠 차에 타면 멀미가 무엇이냐는 듯 카시트에 몸을 맡기고 자곤 한다. 하루하루 하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진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마치 인생이 무한한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 게 된다. 하봄이 견생이 봄날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하봄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 우리의 봄날이 계속되는 것 같다.

더봄센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 오빠 썬그리 끼고 카시트에 앉아 한컷
산책이 어색해 자꾸만 주저 앉는 하봄
(제주에서) 수국을 좋아하는 하봄 / 배보이고 자는 하봄

어때요? 우리 하봄이 예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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