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과 통보, 그 사이 어딘가
오늘 오후, 오랜만에 시댁단톡방이 울렸다. 시어머니의 퇴직이 빨라졌다는 비보와 함께 제주연수 일정에 맞춰 우리 집에 오시겠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항상 ~되겠니?라는 제안형식을 띠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강요당하는 통보처럼 느껴지는 묘한 구석이 있다.
결혼 준비 할 때도 그랬다. 3월에 만난 우리는 5월에도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시누 형님의 7월 결혼식이 확정되어 있던 터라 상도를 지켜 추석 지나고 10월로 정했고 상견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모두 동의하셨다. 얼마 후 식장에 계약금까지 걸고 예약하고 나오는 나에게 어머니 전화가 걸려왔다. “내년 춘삼월에 결혼하면 어떻겠니? 날씨도 좋고 좋잖아. 네가 아들 좀 설득해 줄 수 있을까?”라고 하셨다. 내 의견을 묻는 말이 아니었다. 비단 날씨 때문은 아니리라.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 언질도 없이 춘삼월 통보는 꽤나 황당했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달했고 남편은 설득을 당하기는커녕 노발대발했다. 처음이라고 했다. 엄마에게 언성을 높인 적, 엄마 말을 거역한 적이. 남편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이렇게 미루기 시작하면 처가에서 자기 대학 졸업하면 하라고 미룰 거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관계의 다음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아마도 사회인이었던 나와 휴학생으로 돌아갈 본인의 관계가 불안했던 것 같다. 남편은 이미 상견례까지 해놓고 이렇게 날짜를 바꾸는 건 아니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다 결국 남편은 전화기에 대고 조아리며 빌기까지 했다.
“내가 엄마한테 큰 거 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크게 엄마 말 거역한 적도 없잖아요. 이번만큼은 양보 못 해 드려요. 정말 죄송해요. 이번은 제 의견에 따라주세요. 제발요. “
어머니가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매번 나대는 누나에 밀려 뒷전이었던 남편은 결혼만은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 결혼식에서 남편은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의 이번 방문통보에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거니와 한참 남은 다음 달 중순 날짜까지 집어서 말씀해 주시는 데 어쩔 도리가 없기도 했다. 8월 중순 일요일에 오셔서 주무시고 월화수목 연수원에 가시고 연수가 끝나는 목요일에 오셔서 주무시고 금요일에 가신다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도 함께 오시는지 물었다. 연수니까 아버지와 함께 동행하시진 않을 거란걸 알고 있었다. 역시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 집 며느리 9년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뜻)로 초대의 말을 원하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오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어머니 연수가 끝나는 목요일에 오셔서 주말 보내시다 가시라는 마음에 1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차비가 없어서 못 오신다는 시아버지. 튕기시기는. 나는 아랑곳 않고 그럼 크루즈다 생각하시고 배 타고 오시라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지. 그 이후 살짝 삐지셨는지 마음이 상하셨는지 아예 답이 없으시다. 나는 모범 답안을 알고 있었다. “비행기표 끊어드릴게요. 꼭 오셔요.” 가 시아버지가 원하는 정답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정답며느리는 하지 않기로 했으니 내 방식대로 말했을 뿐이다.
8월 중순, 걱정반 기대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내 할 말은 하는 나로 변했다. 온라인에서는 내 표현을 제법 했지만 오프라인으로는 처음이기에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이야기 하기로 특화된 두 분과의 3박 4일이라니. 안 되겠으면 외박이라도 해야지. 언니네라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훨씬 여유롭긴 하다.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