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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l 23. 2024

새로움에서 만난 친구들

설렘과 불안의 공존

3주 만에 진료다. 예약 시간보다 50분이나 넘어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우중충하고 쓸쓸한 날씨의 가을이나 추운 날씨탓에 활동량이 적어지는 겨울에 환자들이 몰릴 것 같은데 화창한 여름에 다들 무슨 일인지 지난번부터 갑자기 환자가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병은 계절과 상관이 없는 걸까.


나는 요즘 우울이 무뎌질 만큼 맑은 하늘만 봐도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 몽글몽글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물론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막힌 마음도 뻥 뚫리던데 말이다. 각자의 고민들을 안고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리 어둡지 않다.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겠지.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네.” 미소로 맞아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저냥 지냈어요. 특별한 일 없이.”

“잠은 잘 주무세요?”

항상 내가 잘 자는지를 가장 먼저 체크하시는 의사 선생님이다. 아마도 중요한 체크포인트인 것 같다.

“주말에 갑작스러운 외박(?)을 하게 됐는데, 그때는 약을 먹지 못해서 정말 잠을 거의 못 잤고요. 집에 온 이후로 약을 먹고는 잘 자요.”

“저번에는 새벽에 일찍 깨셔서 강아지랑 오름도 가시고 하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러세요?”

“아니요. 요즘은 늦게 일어나서 못한 지 꽤 됐어요.”

새벽에 새별오름에 간 기억이 까마득한 걸 보니 최소 2주는 된 것 같다.


“피곤하신가 봐요.”

“네. 낮에도 졸려서 4시쯤엔 꼭 졸아요.”

“음. 그러시군요. 감정조절은 잘 되는 편이세요?”

“잘 될 때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언제 조절이 안되세요?”

“갑자기 아이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건 불안하다는 뜻이에요. 사실 아이는 화나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아이는 아이답게 평소대로 행동하는데 내가 어떨 때는 너그럽기도 하고 어떨 때는 화를 낸다는 건 내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불안 때문에 그런 건데요. 혹시 불안한 일이 있으실까요?”


“제주에 와서 아이 친구 엄마나 남편의 직장선배들이 아닌 오롯이 저로 관계할 수 있는 새로운 그룹을 만나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요. 혹시 그것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은 떨리고 설레기도 하죠. 반대로는 불안하기도 하고요. 특히 환자분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신 편이시다 보니 더 예민하게 느끼실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원래 불안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관계를 끊고 도망치거나 손절을 했는데 지금 느끼는 이 불안으로부터는 나오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시간이 잘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새로운 그룹과 오래 지속된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불안하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새로운 일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지만 사실 방법을 몰라서 불안한 것 같아요. “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주 좋은 신호 같은데요. 감정조절 하는 약을 추가할게요. 아이를 위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시고 드셔 보셔요.”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갑자기 아이에게 욱해서 화를 냈던 지난 주말과 어제의 내 모습이 떠올랐고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불안을 다루지 못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아이에게 화가 날 때마다 내 마음을 다독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곧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내가 아이에게 화가 나는 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가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새로움에는 설렘과 불안이 공존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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