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면,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니?"일과 사람에 치여 의기소침해 있던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비슷한 말을 종종 들었다. 어릴 때 나는 이런 맥락 안에서 자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 씨앗은 성인이 된 지금도 살아가는데 동력이 되곤 한다.
일하면서 내담자(환자)를 만날 때_ 특히 관계 이슈로 힘들어하는 이와 이야기 나눌 때_ 입 밖으로 낸 경우는 흔치 않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어요. 그들은 당신에 대해 정말 모르는군요. 조금만 당신을 보여주세요. 그들도 알 수 있도록 말이에요."
강의할 때는 '내담자를 이해할 수 없다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관심이 부족해서 제대로 묻지 않은 거라고. 현재 겪는 문제, 병리가 사람보다 먼저 보여서 일거라고 말이다. 설령 상담 흐름상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제대로 질문하지 않은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상담 첫 발을 내딛을 수 없고 그건 위장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에 대해 알게 되면 상대가 실망하거나 심지어 떠날 것이라는 불안을 품는다. 자신을 미워하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대단한 흑역사가 아님에도 말하기를 꺼려한다.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느끼고, 자신을 혐오한다. 조심스럽게 표현된 말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안쓰러움을 표현하면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내 의도를 의심한다.
평소 말수가 적으셨던 아버지에게 나는 완벽한 딸이었을 리 없다. 기대를 충족시켜 드린 자식도 아니었을 거다. 가끔 기특하셨을까? 이 또한 자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성한 나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 확신으로 사람과 관계 맺으며 살고 있다. 절대적인 사랑덕에 종종 자신감은 잃을지언정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는다.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노래 가사, 드라마 대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사랑을 증명하려는 클리셰 같아서다. 내친김에 더 비틀어보자면 자기 사랑을 입증하는 데에만 급급한 미숙한 표현 같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지면,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당신을 온전히 알게 된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표현만큼 설레는 말이 있을까 싶다. 부모가 자녀에게, 연인이 서로에게 혹은 친구끼리 언제 써도 좋은 말 같다. 나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엄청난 위안이다. 가능한 그런 사람이 그의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병원과 개인 연구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대단히 멋있기만 한 사람도, 엄청 후진 사람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모두 비슷하게 훌륭하고 적당히 쪼잔하고 가끔 미련한 짓도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면 경외심이 든다. 사람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심리 상담사라는 내 직업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묻는 일'에 가깝다. 이 노동으로 밥벌이할 수 있어서 좋다. 당신에 대해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을 온전히 알게 된다면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K에게 할 수 없었던 말을 대신 이곳에 눌러쓴다. 그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