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스튜에 마음 끓인 날

자몽소다의 위로

by 그레이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가 조금 기울었다.

출근 전, 방학이라 집에 머무는 아이를 위해 치킨스튜를 끓였다.

한 끼라도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었다.


김이 오르기 시작했지만, 부엌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출근 준비는 바빴고, 냄비는 내 부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 됐겠지.”


짧은 판단은 깊은 탄내로 돌아왔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냄비 바닥은 까맣게 타 있었다.


한참을 그을린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처음부터 다시 끓였다.

시간은 빠듯했고, 마음은 조급했지만

닭가슴살을 꺼내고, 토마토와 야채를 썰고, 국물을 다시 냈다.

조심스럽게, 다시.


그리고 아이를 조용히 불러 식탁에 앉혔다.

겨우 밥을 먹이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집을 나섰다.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저녁처럼 가라앉았다.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그때, 후배가 말없이 시원하고 예쁜 병 하나를 건넸다.

투명한 유리병.

서리가 희미하게 맺힌 표면, 그 안에 담긴 연분홍빛 자몽소다.

뚜껑을 여는 순간, ‘퍽’ 하고 작게 터지는 소리.

기포가 병 밖으로 튀었고,

그 짧은 찰나에 내 안의 답답함도 조금 흩어졌다.


상큼한 향, 혀 위에서 사르르 터지는 기포.

입안이 시원해지자 마음도 덜컥 가벼워졌다.


그건 단순한 탄산의 맛이 아니었다.

조용한 다정함이 내게 도달하는 방식이었다.


살다 보면 애써 준비한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지쳐 있고,

그 모든 걸 다시 하자니 자신이 없을 때.


그럴수록, 그럼에도

다시 손을 뻗는 내가 되고 싶었다.


서툴고 급하게 만든 것일지라도,

누군가의 식탁에 따뜻함으로 남는 일.

그 마음 하나로도 하루가 충분하도록.


자몽소다를 건넨 손,

타버린 냄비 앞의 나.

서툰 마음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하루를 결정짓는 건

무너진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의 다시 해보려는 마음,

그리고 아주 작은 위로 하나였다.


그 작은 위로 하나가,

내 하루를 다시 일으켰다.


우린 서로 무심한 듯,

늘 이런 방식으로 감동을 건넨다.

내가 지친 날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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