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2일
장을 보다 2002-12-02
아침 새벽기도회는 없다만 일찍 일어나서 8 시 문 여는 도서관에 갔다가 9시 수업 들으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 7시 45분이다. 그래서, 아침 챙겨 먹고 샤워하고 곧장 수업 들으러 갔다. 수업 후 바로 도서관에 가서 자리 맡고 Paul 네 집으로 한국말 과외 하러 갔다.
과외 마치고 잠깐 Express Tops에 들러 간단하게 우유만 사야지 했는데, 이것저것 사다 보니 세 봉투나 되었다.
눈보라가 점점 더 심해져서 college town에서 버스 타고 학교 안까지 들어간 다음 집가는 버스로 갈아타야지 생각했다.
그때는 한낮, 12시다. 캠퍼스에 학생들로 많이 붐빈다. 버스 기다리면서, 또 올라타 앉아있으면서 기분이 갑자기 좌아악~ 가라앉는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니고 그냥 좀 훤한 대낮에 장을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지?
난, 장보고 이런 버스 타고 집에 가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근사한 차 몰고 가장 크고 비싼 Wegman에 가서 장 보고 유유자적하게 눈보라가 휘날리는 이런 날 집에 왔어야 했나? 아님, 그래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건가.
말로는 가난해도 좋아, 평생 가난하게 살겠어, 그렇게 살아주겠어... 내 영혼이 부유해질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지금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맘껏 하면서도 뭐가 부족하다고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신세한탄 하고 앉아있나.
현재의 내 모습이 초라하다고 오늘 나를 마구 학대하는 건 아닌가 싶다. 삶은 현실과 꿈 사이의 큰 Gap을 좁히는 무수한 노력이리라...
그나저나, 이구, 먹고살겠다고 서 재진 이렇게 많이 사고, 무거워 죽겠네... 오늘따라 왜 이리 눈은 거세게 몰아칠꼬... 집에 와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점심 먹었는데. 온몸에 몸살 기운이 도는 것처럼 뻐근하고 몽둥이로 뚜둥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눈 좀 붙이고 나면 나아지겠지.
중략....
오늘 문득 눈보라 속을 유유자적하게 4륜 구동 차 몰고 장 보다가 예전 일기가 생각이 나 찾아보았습니다. 2002년 12월 2일 차 없이 걸어서 장 보고, 버스 타면서 꿀꿀해하던 제 모습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는 제 일기를 발견하고는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일들이, 까마득한 20여 년 전 꿈꾸던 일들이었네요. 매 순간 헛되지 않게 감사로 띠 띠우며 살아야겠습니다.
멀리 보이는 버스 정류장 의자가, 바로 장을 세 봉지나 보고 버스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던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