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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02 에너자이저 행복바이러스

                 우리들은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니 작은 그놈이 난리가 나서 우리를 반겼다.

얼마나 좋은지 그 조그마한 몸으로 빙빙 돌고 벽을 치고 난리가 났다.     

‘잠에서 깬 아침에 이런 환영인사를 받다니...’     

너무나 기분이 좋고 행복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의 걱정은 생각조차 안 났다.  

역시 내일일은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닌 것이 맞다.   


        


그 녀석이  온 이후로 남편과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가는 문을 열 때면 

설렘과 놀랠 준비를 하고 마치 이벤트를 맞이하는 사람들처럼 문을 열었다.

이미 문 밖에서 그 녀석은 마치 자기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앞발로 문을 살짝 긁었다.

우리도 거기에 장단을 맞추듯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문을 열곤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거기에는 우리를 너무나 반겨주는 우리 강아지가 있었다.     

아이가 반겨주는 그 1분이 아니 어쩌면 30초일지도 모른다.

그 30초가 내 세포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주고 깨어나게 했다.          


이렇게 귀여운 환영인사는 어린 강아지 시기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이런 인사를 받으면 그 순간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듯한 마음이 되곤 했었다.          


이 너무나 인형같이 귀여운 녀석은 온통 까만색에 갈색 양말을 신은 듯 발목까지만 갈색 털이 있었다.

얼굴도 너무나 까매서 어디에 눈이 있는지도 보이지가 않았다.

얼굴을 자세하게 보려면 얼굴을 닦아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했었다.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온통 까만 아이는 깜깜하다는 뜻으로  ‘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밤이야”라고 불러주니까 몇 번 만에 알아듣고 곧잘 달려왔다.

녀석은 영리했다.     

밤이는 우리와 같이 사는데 필요한 단어들을 정말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같은 가족 간의 호칭을 빠르게 알아들었고 밥. 물 간식 등 생존에 대한 단어들도 빠르게 배웠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잘 알아내곤 했다.

목이 마르면 정수기 앞으로 가서 우리와 정수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것을 알아채는 우리도 대단하지만 아직 3개월밖에 안된 강아지가 같은 부모도 아니고 사람에게 

입양되어 낯선 집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물을 먹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다는 게 놀라웠다.


밤이는 잔 짖음도 헛 짖음도 없는 아이였다.

별로 엉기지도 않는 아이였다.

가족들이 나가고 밤이 와 나만 집에 있으면 밤이는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온몸에 허브향을 묻히고 

부엌에 나타나곤 했다.

그것은 녀석이 베란다에서 놀다 왔다는 증거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은 참으로 독립적이었다.     

온몸에 허브향이 가득한 그 녀석은 주방으로 와서 의자 다리를 갉아대거나 아니면 엎드려 자거나

 너무나 조용하게 알아서 노는 녀석은 어떨 땐 강아지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할 정도였다

내가 종종걸음으로 집 안 일을 하면 방해하지도 않고 너무나 사랑스럽게 졸졸 따라다니면서

 혼자서 잘도 놀았다.

화분 사이로 지나가는 밤이의 모습

가끔은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잘라주는

 야채 부스러기도 맛있게 받아먹기도 하고 가끔은 꽃잎을 잘라서 아삭거리면서 잘라먹기도 하고

그러다 안 보이면 한 편에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자고 있었다.     



이렇듯 하루 종일 조용하던 녀석이 다시 시끄러워지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가족들의 귀가시간이었다.

한 사람씩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 녀석은 다시 요란한 환영인사를 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마치 백 만년 헤어졌다가 만난 것처럼  환영을 했다.


귀를 머리 뒤에 붙이고는 눈을 감으면서 꼬리를 흔들어 대면서 너무나 좋아서 심지어 소변을 

찔끔거리면서 싸기도 했다.

정말 그 1분 정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만남이 연출되었다.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었다.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 녀석이 낑낑대고 우는 소리를 내는 것도 

투명한 중문에 서서 들어오는 가족들을 보면서 문을 긁어대는 것도 그때였다.

마치 신발을 벗는 시간도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이 가족들의 귀가를 환영해주었다.     

 지칠 법도 한데 매번 가족들이 한 명씩 귀가를 할 때마다 환영을 해 주었다

환영을 해 주는 녀석도 받는 우리도 왜 그런지 지치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 녀석이  해주는 환영인사는 식상해지지가 않았다.


왜 그럴까?

진짜 매번 좋고 또 행복하다.

 녀석은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우리에게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 환영 인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귀를 접고 꼬리를 각도 있게 좌우로 흔들면서 말이다.

지금은 꼬마 때보다는 좀 더 격조 있지만 여전히 한 바탕 회포를 풀어야 끝이 난다.     

요란한 환영인사 후에도 반가움을 표현할 게 더 남아있다는 듯이 그 작은 몸으로 쏜살같이 온 집안을 달렸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식탁이나 소파가 보이지도 않나 보다.

거기에 부딪혀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한참을 축구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를 하듯이 거실을 계속 몇 바퀴를

돌면서 정신없이 뛰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 다리를 뻗고 잠이 든다.

그러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꿀벌 옷을 입고 잠자고 있는 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온 집안을 들뜨게 만들던 녀석이 잠이 들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집이 되었다.

꼬마 강아지 밤이 때문에 시끌벅적하던 

집이 좋았고 다시 조용해진 집도 좋았다.

그렇게 밤이는 우리 가족과 집에 적응해 나갔고 



우리는 밤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행복한 착각으로 
길들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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