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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03 제발 그만 물어라!

   허니문은 역시 짧구나 

     

그 사랑스럽고 아침마다 행복을 뿜어내어 내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던 녀석은

 이갈이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냥 행복한 허니문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밤이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려고 잇몸이 가려운지 뭔가를 물고 뜯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뭔가가 문제였다.

그 뭔가에 우리가 포함이 되어있었다.

더 이상 우리들의 집은 편안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밤이가 출몰하는 곳이면 물건이든 우리든 밤이의 사냥감이 되었다.

우리의 손과 발은 이제 상처투성이가 되어갔고 밤이가 애교를 부리면서 매달리는 그 시간에 

우리는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우리도 비명을 질러댔지만 

물건들 조차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방금 맞춰다 놔둔 안경이며 이어폰이 

밤이의 조그마한 이빨에 물려서  

금세 금이 가고 모가지가 잘라져 희생양이 되곤 했다..     

전혀 모르고 입고 나간 옷이 녀석의 입모양에 맞춰 재단이 되어 잘라져 있기도 하고

 가방도 한쪽 귀퉁이가 잘라져 있기도 했다.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순간 밤이가 떠오르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멀쩡한 옷과 가방을 밤이 입 모양대로 오려놓을 사람은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없으니까 말이다.

대체 언제 이렇게 그 작은 입으로 다 물어뜯어 재단을 해 놨는지

사는 게 코미디 같았다.     

집은 도배를 다시 해야 할 정도로 한쪽 벽을 다 뜯어 놓기도 했다.

그 작은 강아지가 어떻게 이렇게 큰 공사를 치르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가구는 이빨 자국이 없는 게 없었다.

테이블이며 의자며 나무로 된 다리란 다리는 다 사각사각 잘도 갈아 놓으셨다.

그래도 이런 것은 화가 나다가도 귀여운 모습에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건이 망가지는 것은 다시 사거나 고치면 되는데 몸이 상처가 나고 아픈 건 정말 힘이 들었다.     

열심히 이빨을 갈고 있는 밤이

우리들은 그때부터 녀석을 피해서 쏜살같이 방으로 숨기 일쑤였다.

그때는 달리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녀석을 피해서 방으로 달아나 숨는 게

 상책이었다.

     

너무나 귀엽긴 한데 그 작고 뾰족한 이빨로 물리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온 몸이 긴장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향해서 화를 내고 ‘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걸음걸음 쫓아와서 뒤꿈치를 물어대고 안으면 손을 물어대고

 정말 이건 귀여운 강아지가 아니라 가시 달린

 밤송이가 집안에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밤이만 보면 마음속에서 무한정 올라오던 행복이 사라지고 전쟁이 선포되었다.     

“하아! 이래서 애네들이 시바인가?”

“그래 허니문은 끝났어 이제는 실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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